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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578
한자 玄風 社稷壇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469년경연표보기 - 현풍 사직단 건립
훼손 시기/일시 1908년 - 현풍 사직단 일제에 의해 훼철
이전 시기/일시 1997년 8월 - 현풍 사직단 복원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8년 - 현풍 사직단 개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2010년 6월 - 현풍 사직단 개축 복원
현 소재지 현풍 사직단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원소재지 현풍 사직단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 453-10
성격 제단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조선 시대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

[개설]

사직(社稷)은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을 가리킨다. 두 신을 제사지내는 단을 만들어 모신 곳이 사직단(社稷壇)이다. 사직단의 위치는 『주례(周禮)』에 잘 규정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사직, 왼쪽에 종묘’라 하였다. 종묘는 수도 한 곳에만 설치하는 데 반해 사직은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 단위인 주현(州縣)마다 설치하였다. 주현의 사직도 관아의 서쪽, 곧 오른쪽에 세웠다. 현풍 사직단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면,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사직단 재군서이리(社稷壇在郡西二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재군서(在郡西)’,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에 ‘사직단 재서부면(社稷壇在西部面)’이라 하였다.

참고로 1996년~1997년 사직단 복원 내용을 담은 사직단 복원비와 2010년 제작된 달성[옛 현풍] 사직단 표지석이 현풍 사직단 북쪽 홍살문 우측에 있는데,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사직단 복원비

옛 사직단 터는 지금의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 소재 충혼탑이 있는 곳으로서 세종조(1418년)에서 성종조(1469년)에 이르기까지 조선 제3대 현풍 현감을 지낸 채석견(蔡石堅)이 고을 백성을 위해 토신[사]과 곡신[직]에게 제사를 올리는 사직단을 만들었다. 『신동국여지승람』 권27, 『현풍 읍지』 등 문헌에 의하면 단이 현의 서쪽에 있고 남향으로 3층 돌층계로 꾸며졌으며, 정문에는 표문(表門)이 있었는데 사직단을 중심으로 사직산이라 불리었으며 나라에 큰 일이 있으면 현풍 향유(鄕儒)들이 이곳에 모여 북향하여 국궁(鞠躬) 사배(四拜)했다고 전한다.

그 후 일제 시대 때 그들의 식민지 사관을 뿌리내리도록 사직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신사를 지었는데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5년 1월에 우리의 우국지사가 됫병에 석유를 넣어 불 질러 한줌의 재로 변했다고 한다. 현재 그 자리에는 충혼탑이 이미 들어서 있기 때문에 양시영(楊始榮) 초대 민선 달성 군수는 향토사학자 채수목(蔡洙穆)의 자문을 얻어 명산인 읍동산 이곳에 1996년 1월부터 1997년 8월에 걸쳐 사단과 직단을 복원하고 위패(사신과 곡신)를 모시어 군민의 태평 안강(安康)을 축원하는 제의를 갖게 함으로써 전통 문화유산을 계승하고 후세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널리 알리고자 사직단을 복원하게 되었다. 서기 1997년 8월 일

2. 달성[옛 현풍] 사직단

사직단(社稷壇)은 토지를 주관하는 사신과 오곡을 주관하는 직신에게 고을의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매년 중춘과 중추에 사직제를 지내고 나라의 큰일이나 가뭄이 있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옛 현풍 사직단은 세조 14년(1469) 경 당시 현풍 현감인 채석견(蔡石堅)이 현 서쪽, 지금의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설치하였으나 순종 2년(1908) 일본의 강압에 의해 폐허되고 그 자리에 신사(神社)를 지었던 것을 1945년 1월 우리 애국지사들이 불태워 버렸다. 현재의 사직단은 옛 현풍 사직단 터에 충혼탑이 세워져 원래 자리에 복원하지 못하고 1996년 1월 양시영(楊始榮) 군수가 향토사학자 채수목(蔡洙穆)의 자문을 얻어 이곳 상리에 사직단을 복원하였고, 2009년 12월 향토사학자 윤홍석(尹洪錫) 등 유림의 주선으로 옛 문헌인 『국조오례의』 등의 고증에 의하여 2010년 6월 이종진(李鍾鎭) 군수가 지금의 사직단을 개축 복원하였다. 2010년 6월 달성 군수

[위치]

현풍 사직단은 현재 달성군 현풍읍 상리 체육공원이 있는 읍동산(邑東山)에 복원되어 있다.

[현황]

현풍 사직단의 북쪽에는 달성 문화원이, 남쪽에는 현풍 석빙고가 위치하고 있다. 현풍현의 옛 사직단은 현재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 충혼탑이 있는 곳으로 비정된다. 이곳에 충혼탑이 세워져 있어 원래 자리에 복원하지 못하고 현재의 자리에 1996년~1997년 2년에 걸쳐 복원하였다. 이때의 사직단은 500㎡의 대지 위에 가로, 세로 각 5m, 높이 1m의 방형 단을 5m 거리를 두고 2기가 동서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사단(社壇)은 서쪽에, 직단(稷壇)은 동쪽에 배치하여 북쪽을 제외한 3면에 계단을 쌓았다. 이후 1998년 한 개의 단으로 새롭게 복원하였고, 2010년 개축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사직단은 사면의 방형 담장 안에 남쪽으로 좀 치우쳐 1기의 사직단이 설치되어 있다. 담장의 각 중앙에는 홍살문이 있다. 사직단은 3단이며, 각 방향의 중앙에는 3단의 계단이 있는 형태이다.

[의의와 평가]

현풍 사직단은 달성군의 전통 문화유산을 계승함과 동시에 후세들에게 산 교육장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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