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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399
한자 大邱 把溪寺 神衆圖 및 腹藏遺物 一括
영어공식명칭 Painting of Sinjung and Excavated Relics of Pagyesa Temple, Daegu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성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824년연표보기 - 대구 파계사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5년 5월 11일연표보기 - 대구 파계사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대구 파계사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현 소장처 대구 파계사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지도보기
원소재지 대구 파계사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 -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중대동 7]
성격 신중도 및 복장유물
재질 종이
소유자 파계사
관리자 파계사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에 위치한 파계사에 소장중인 조선후기에 제작된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

[개설]

정법수호의 신장상(神將像)[불교의 호법신 가운데 무력으로 불법을 옹호하며 불경을 수지독송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신장의 조각상]은 고려시대까지 불화, 벽화 등 개별 도상으로 그려졌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전각봉안용 불화로서 여러 신들을 함께 그린 「신중도(神衆圖)」로 표현 방식이 변화되었다. 「신중도」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大雄殿),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大寂光殿), 불전(佛殿)이나 보살을 모신 보살전(菩薩殿) 등에 주로 봉안되었다. 신중도는 18세기부터 20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던 대중적인 불화로서 도상은 신중들의 서열을 의식하여 배치된다. 신중도의 유형은 제석을 주존으로 하여 권속을 그린 「제석천도(帝釋天圖)」, 위태천을 중심으로 신장상들을 그린 「천룡도(天龍圖)」, 제석천도와 천룡도를 한 화면에 함께 그린 「제석천룡도(帝釋天龍圖)」, 명왕의 일위(一位)인 예적금강(穢跡金剛)과 그의 권속인 팔금강(八金剛), 사보살(四菩薩)이 함께 추가된 「신중화」가 있다.

「대구 파계사 신중도」는 그림 하단에 「대구 파계사 신중도 화기」를 근거로, 1824년(순조 24) 화승[불화를 그리는 사람] 관보(琯普), 체균(体均), 금겸(錦謙), 두천(斗天)이 제작했음이 밝혀졌다. 관보와 체균은 19세기 전반 영남지방에서 활약했던 화승이다.

[형태]

대구 파계사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은 종이로 제작된 신중도 그림 1점과 여러 점의 복장유물로 되어 있다. 복장유물로는 「팔원문」, 「황초폭자」, 「팔엽대홍련도」, 「준제천원도」, 「열금강지방도」 등이 있다.

[특징]

「대구 파계사 신중도」는 조선시대에 그려진 「신중도」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비록 화면 전체에 오염이 심하며 언젠가 개채(改彩)[불상에 채색을 다시 함]의 흔적도 있어 원래 모습에서 다소 변형되었지만, 화기뿐만 아니라 발원문을 비롯한 복장품이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19세기 전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파계사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은 신중 신앙의 결정체로써 미술사적인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민간 불교의 신앙을 포용하고 있어 조선후기의 대중화된 불교의 의식과 신앙을 보여 준다. 대구 파계사 신중도 및 복장유물 일괄은 2015년 5월 11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문화재공간정보서비스(http://www.gis-heritage.go.kr)
  • 문화재청(http://www.cha.go.kr)
  • 파계사(http://www.pagyesa.org)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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