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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77
한자 徐東均
영어공식명칭 Seo Donggyun
이칭/별칭 죽농(竹農)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황연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2년 3월 26일연표보기 - 서동균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7년 - 서동균 해성보통학교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22년 - 서동균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서동균 진주에서 우청 황성하와 합동전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30년 - 서동균 향토회 창립에 동참
활동 시기/일시 1934년 - 서동균 교남서화회 회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68년 - 서동균 계산성당 내에 계산서예원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75년연표보기 - 서동균 문화훈장 대통령 정장 및 부장 수상
활동 시기/일시 1975년 - 서동균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초대 작가 및 심사위원으로 위촉
몰년 시기/일시 1978년 5월 25일연표보기 - 서동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9년 - 죽농 서동균 기념사업회 발족
추모 시기/일시 1983년 - 서동균 예술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85년 - 서동균 작품집 발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6년 - 서동균 대구광역시의 현창 인물 6인에 선정
출생지 대구 -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 먹당골목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해성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지도보기
성격 화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중구 출신의 화가.

[개설]

서동균(徐東均)[1902~1978]은 1902년 2월 17일[음력]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 먹당골목에서 태어났다. 1907년 7세 때부터 중추부사를 지낸 할아버지 서용묵에게 한문과 서예를 배웠고, 당시 유명한 서예가였던 팔하(八下) 서석지(徐錫止)[1826~1906]에게서 서예를 배웠다.

[활동 사항]

서동균은 당시의 큰선비였던 김만취를 스승으로 모시고 한학에 전념하였다. 15세가 되던 1917년에 서동균은 해성보통학교[현 효성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하였다. 18세인 1920년에 평생을 서화의 길을 걷도록 지도하여 준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5]를 만났는데, 서병오는 의성군수 손해진의 관사에 걸려 있던 서동균의 글씨 한 점을 보고 서동균을 불러 제자로 삼았다고 한다. 1921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서양화가 나카무라 후세츠[中村不折]와 남종화가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의 문하에서 1년간 수학하였다.

서동균은 1922년 귀국 후 서병오가 창설한 교남서화연구회에 들어가 본격적인 서화의 기량을 닦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하였으며, 그 뒤에도 8회에 걸쳐 입선과 특선을 하였다. 1925년에는 진주에서 우청 황성하와 합동전을 가졌고, 밀양, 의령, 온양, 안동, 공주, 전주, 대구, 부산 등에서 평생 2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고 한다. 1930년에는 서동진, 박명조, 최하수 등과 향토회 창립에 동참하였고, 1934년 교남서화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1949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서예부 설치를 요청하여 1952년에 서예부가 증설되기도 하였다.

서동균은 1968년 큰딸을 잃고 천주교에 입교하여 계산성당 내에 계산서예원을 설립하였고, 이후 1975년에는 서예가 최초로 문화훈장 대통령 정장 및 부장을 받았다. 1975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초대 작가로 추대됨과 동시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서동균은 1978년 5월 25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서동균은 서화에 기량이 뛰어났다. 특히 서동균의 문인화는 영남 지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서동균서병오에게서 전수한 농묵과 발묵의 서예적 필치 중심의 ‘석재풍’ 묵죽화를 근간으로 회화성이 풍부한 ‘죽농풍’ 묵죽을 완성하였다.

대구미술협회에서 간행한 『대구미술 100년사』-근대편에서는 서동균에 대하여 “서병오가 중국 상해의 신문인화를 직접 수용하여 영남 일대에 ‘석재풍’ 문인화를 널리 보급시켰다면 서동균은 스승을 계승하되 그것을 회화성 풍부한 화풍으로 완성하여 한국 현대 묵죽화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 ‘죽농풍’ 문인화를 영남은 물론 전국으로 유행시켰다.”라고 평가하였다.

[상훈과 추모]

서동균이 15대 회장으로 있었던 교남서화회의 후신인 영남서화회에서는 1979년 석재 서병오죽농 서동균의 기념 사업회를 발족하고, 1983년 예술비를 건립, 2년 후인 1985년에는 작품집을 발간하여 서동균의 업적을 기렸다. 이후 영남서화회는 2009년에 죽농서단으로 개칭하여 매년 죽농서단 회원전과 죽농서화대전 등을 개최하고 있다. 2016년에는 서동균서동균의 스승인 서병오와 함께 대구광역시의 현창 인물 6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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