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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273
한자 鄕土會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성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 향토회 결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0년 - 향토회 창립전
성격 미술 단체
설립자 최화수|서동진|박명조|김성암|이인성|배명학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미술 단체.

[개설]

향토회(鄕土會)는 1930년 설립되어 서동진(徐東辰), 박명조(朴命祚), 최화수(崔華秀), 김성암(金星岩), 이인성(李仁星), 배명학(裴命鶴)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설립 목적]

향토회는 일본인 미술 단체인 경북미술협회와의 경쟁 의식으로 영과회 회원들이 설립한 단체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향토회는 1930년에 결성하여 조양회관 교육부의 주최로 창립전을 가졌다. 향토회의 창집전에는 이인성의 「가을의 어느 날」, 김성암의 「흰 벽 있는 풍경」, 박명조의 「풍경」, 서동진의 「성탑부근」, 김용조의 「정물」, 최화수의 「황포정물」 등 총 16명이 48점을 출품하였다. 1931년 제2회 향토회전은 서동진, 배명학, 김성암, 최화수, 이인성, 박명조 등이 참여하였다. 1932년 제3회 향토회전이 열렸으며 제4회는 1933년 열렸다. 『동아일보』의 기사[1933. 11. 12.]에 의하면 ‘대구로서는 근년래에 처음 보는 미술의 호화판’이라는 평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향토회는 대구 화단의 기반을 굳혔다는 점, 대구 미술이 발전할 수 있는 전초지를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그러나 향토회의 전신인 영과회의 진보적인 미술인을 제외하였다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미술 등 다양한 미술 세계를 포괄할 수 없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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