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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69
한자 國民精神總動員慶北聯盟
이칭/별칭 정동경북연맹,국민정신총동원경북도연맹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8년 8월 26일연표보기 -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 결성
해체 시기/일시 1940년 10월 16일연표보기 -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에서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통합
최초 설립지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 -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23길 80[중구 봉산동 57]지도보기
성격 전시 총동원 기구|관변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소속 지부.

[설립 목적]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중일전쟁에 대처하고 국가 총력전에 대비하여 국민운동의 통제를 강화하고, 정보선전의 필요로부터 거국일치·진충보국·견인지구·내선일체·황국신민화라는 목표를 갖고 실시되었다.

[변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1937년 8월 24일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磨] 내각이 「국민정신총동원실시요강」을 각의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1938년 7월 7일부터 1940년 10월 16일 국민총력운동이 등장하기 전까지 시행되었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전체 조선 민중의 조직화에 중점을 두었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조직은 도시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설치되었다.

1938년 6월 22일 국민정신총동원운동 발기인회가 각 도지사, 읍면장, 지방 각계 인사 등에게 지방연맹을 결성할 것을 종용하였고, 1938년 7월 22일 정무총감도 각 도지사에게 하부 연맹 조직과 관련한 지시를 내렸다. 1938년 8월 15일경까지 대구부·경북의 모든 군과 섬을 단위로 국민정신총동원 지부를 설치하였고, 1938년 8월 26일까지 하부 조직을 모두 합쳐 대구소학교에서 30여 명이 참석하여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을 결성하였다. 당시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 산하 정동반(精動班)의 수가 3만 7912반이고, 반원(班員)은 42만 2830명에 달했다. 경북 내 총호수의 90%가 가입할 정도로, 일제가 전력을 다하여 조선 민중을 전시체제로 편입시키고자 하였다. 1939년 7월 18일 이사회를 개최하였고, 1939년 9월에는 경북연합대회를 대구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1939년 9월 1일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제는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 부문에서 이루어진 총동원 관련 운동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1940년 10월에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을 비롯한 각종 총동원 단체들이 국민총력조선연맹으로 통합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에서는 1939년 7월 18일 오전 9시에 경상북도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개최하여 국민정신총동원에 대한 철저한 강화 방안과 규약 개정,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의 기구 정비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우선,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에서는 1939년 7월 18일의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정신총동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대구 및 경북 지역에서 가장 적절한 방안으로 ‘궁성요배·신사참배’, ‘매월 1회 애국반 근로보국 작업’, ‘축제일 국기 게양’, ‘국민 저축 장려’ 등 4개 항목을 선택하였다. 1939년 8월 22일 전후에 일주일간 강조 주간을 설정하여 경북 내 관공서 직원을 총동원하여 각 부락마다 좌담회를 개최하고 시국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주지시키고, 전 도민이 국민정신총동원에 참가하도록 하고자 하였다. 그다음으로, 부·군 단위로 중견 청년을 양성하여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을 경북 내에서 조직적으로 지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1939년 8월 1일부터 5일간 경북 내 교화 이사, 농회 서기 등 100명을 소집하여 국민정신총동원에 대한 내용을 강습한 후, 강습을 받은 100명으로 하여금 각 지방의 중견 청년 30명씩을 선발하여 각지 향교에서 양성·훈련하기로 하였다.

1939년 12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경제전(經濟戰) 강조 운동 기간으로 설정하고, ‘소비 절약’, ‘생활 쇄신’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또 1939년 12월 10일 대구공회당에서 ‘거도일치, 재해극복’을 부동의 철칙으로 결의하는 행사도 가졌다.

[현황]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은 창립 당시 이사 20명과 간사 20명이었다. 이사는 민간 유력자, 은행가, 실업가 등으로 구성되었다. 1939년 7월 18일에 이사회를 개최하여 간사를 20명에서 35명으로 증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민정신총동원경북연맹은 대구 및 경북 지역의 조선 민중을 대상으로 황국신민화와 전시 동원 정책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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