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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32
한자 李三文
영어공식명칭 Lee Sammoon
이칭/별칭 효상(孝詳)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이삼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1년 7월 - 이삼문 비밀결사 사회과학연구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1월 - 이삼문 비밀결사 적색노동조합건설대구협의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32년 4월 - 이삼문 부산에서 반전·반제 격문 살포
활동 시기/일시 1932년 11월 8일 - 이삼문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 언도
출생지 본관리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부산 - 부산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적색노동조합건설대구협의회 화학산업부 책임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이삼문(李三文)[1909~?]은 1909년 지금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항일 비밀결사 사회과학연구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이삼문은 대구에서 김일식(金一植) 권유로 1931년 7월 초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공산주의사회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사회과학연구회에 가입하였다. 이삼문은 1931년 8월 7일 사회과학연구회의 조직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눌 때 김석구(金石九)·한순(韓錞)·이경석(李璟錫) 등과 함께 제1그룹에 소속되었다. 이삼문은 사회과학연구회 제1그룹 구성원들과 함께 11월까지 20여 차례 모임을 갖고,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타파하고 공산주의사회를 실현할 방법을 모색하였다.

1931년 11월 김일식의 권유로 노동자의 공산주의화를 위하여 결성된 비밀결사 적색노동조합건설대구협의회에 입회하였다. 적색노동조합건설대구협의회는 노동자들에게 계급의식을 갖게 하여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을 정치 투쟁으로 전환함으로써 공산주의사회 실현하고자 하였다. 적색노동조합건설대구협의회는 의장·학생부·공장부·관공서부·노동부 등의 부서를 두었는데, 이삼문은 화학산업부 책임자가 되었다. 적색노동조합건설대구협의회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와 긴밀하게 연대하였다.

1931년 12월 초 대구격문사건이 단서가 되어 대구 지역 비밀결사 조직이 발각되는 바람에 사회과학연구회적색노동조합건설협의회 구성원들이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들에게 체포될 때, 이삼문은 격투 끝에 검거되지 않고 피신에 성공하였다. 이삼문은 미체포 상태로 1932년 2월 8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현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었다.

이삼문은 1932년 4월 중순 부산에서 비밀결사 부산적색노동조합건설협회 결성에 참여하고 핵심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하여 시위를 벌일 계획으로 5종의 반전·반제 격문을 작성하여 부산 시내 주요 장소와 공장지대에 7~8차례 살포하였다. 이삼문은 부산격문사건으로 부산경찰서 소속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32년 11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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