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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연경화암」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575
한자 登硏經畫巖
영어공식명칭 A Poem Sung On The Hwa-arm Cliff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79년 - 「등연경화암」 저자 채병달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57년 - 「등연경화암」 저자 채병달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73년 - 『우당문집』 간행
배경 지역 화암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율시
작가 채병달

[정의]

근대 유학자인 채병달이 대구광역시 화암산에 올라 연경서원의 유허지를 바라보고 지은 한시.

[개설]

「등연경화암(登硏經畫巖)」의 저자 채병달(蔡炳達)[1879~1957]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중삼(仲三)이고, 호는 우당(愚堂)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미대동(美垈洞) 출신이며, 곽종석(郭鍾錫)[1846~1919]의 문인이다.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광역시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이며,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하였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연경서원의 터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북구 연경동 사이에 있다. 화암산(畵巖山)은 해발고도 110m의 산이며, 지도상에 정식 명칭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화암(畵巖)이라는 하식애(河蝕崖)가 있어 ‘화암산’이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구성]

「등연경화암」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내용]

만상암암기부기(萬狀巖巖奇復奇)[만 가지 모양의 바위들 기이하고 또 기이하니]

선생거후유수지(先生去後有誰知)[선생께서 떠나신 후 아는 이 누가 있으리오]

궁륭대기릉천겁(穹窿大氣陵千劫)[하늘로 우뚝 솟아 천겁의 세월 가벼이 여기고]

풍우전생탁기시(風雨前生度幾時)[전생의 풍우는 몇 번이었는지 헤아리네]

지점유허유무초(指點遺墟惟茂草)[서원 있던 빈터 바라보니 잡초만 무성해]

행심강수상여지(行尋講樹尙餘枝)[강론하시던 나무 찾아보니 잔가지뿐이네]

임류갱대하청일(臨流更待河淸日)[강물 앞에 두고 물 맑아질 날 다시 기다리며]

오도무궁여이기(吾道無窮與爾期)[우리의 도가 무궁하기를 너와 함께 기약하도다]

[특징]

「등연경화암」은 ‘지(支)’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율시이다.

[의의와 평가]

「등연경화암」은 서구 열강의 침탈과 일제강점기라는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불변하는 자연인 화암연경서원의 유허지를 대비시켜 허탈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련(尾聯)을 통하여서는 맥수지탄(麥秀之嘆)의 정서를 반전시켜 흐르는 물처럼 모든 것이 다시 회복되길 바라며 시를 마무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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