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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산동 줄땡기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072
한자 砧山洞 -
영어공식명칭 Chimsan-dong Julddaenggigi|Tug-of-War in Chimsan-dong
이칭/별칭 침산동 줄다리기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놀이 장소 침산동 -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지도보기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정월대보름|음력 2월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서 정월대보름과 음력 2월에 행하던 민속놀이.

[개설]

침산동 줄땡기기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서 전승되던 민속놀이이다. 보통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행하던 다른 지역의 줄땡기기[줄다리기]와는 달리, 침산동 줄땡기기는 아이들은 정월대보름에 하고 어른들은 음력 2월에 하였다.

[연원]

침산동 줄땡기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침산동 줄땡기기는 정월 초열흘 무렵이 되면 아이들이 모여서 ‘애기줄’을 만들어 먼저 줄땡기기를 한다. 그다음 집집마다 짚을 거두어 ‘가지줄’을 만든다. 가지줄이 대여섯 가닥이 되면 길 바닥에 깔아 놓고 새끼로 엮는다. 새끼로 엮은 줄은 한쪽에서 둥글게 말아서 반으로 접은 뒤 두 줄을 같이 묶어 ‘원줄’이 되게 한다. 다음에 ‘줄목’을 만드는데, 줄이 접힌 부분을 타원형으로 구부리고 그 부분을 굵은 새끼로 단단히 동여맨다. 그다음은 원줄에 양쪽으로 지네발처럼 여러 가닥의 줄을 옆으로 매는데 그것을 ‘동줄’ 혹은 ‘벗줄’이라고 한다. 이것은 줄땡기기를 할 때 많은 사람이 당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침산동 줄땡기기는 동사무소 앞 길을 중심으로 동쪽을 웃각단[윗마을]으로, 서쪽을 아랫각단[아랫마을]으로 편을 나누어 진행하였다. 동쪽은 수줄을 당기고 서쪽은 암줄을 당겼다. 수줄과 암줄의 형태는 차이가 없으나 수줄보다 암줄의 목줄이 더 크다.

[놀이 방법]

침산동 줄땡기기는 정월대보름날 점심을 먹은 후 양편이 줄땡기기 장소로 이동한다. 이때 앞에 서는 사람을 대장이라 한다. 대장은 힘이 센 젊은 청년들이 주로 하였는데, 이때 대장은 반짝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 종이로 만든 투구를 썼다. 침산동 줄땡기기를 할 때는 풍물을 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줄을 걸 때까지 동민들은 서로 줄을 당기기 좋은 위치를 잡으려고 서로 밀고 당기고 하다가 저녁 때쯤 고를 걸고 당겼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침산동 줄땡기기는 아이들이 먼저 애기줄을 만들어 당긴 후 어른들이 원줄을 만들어 놀이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암줄과 수줄 외에 동줄 또는 벗줄을 만들어 사람들이 줄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였다. 침산동에서는 줄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대편의 줄을 넘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속설이 있어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부인들이 서로 줄을 넘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밤에 장정들이 줄을 지키기 때문에 실제로 타 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침산동 줄땡기기는 놀이 과정에서 풍농과 다산, 기복 등을 구현하는 벼농사 문화의 전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현황]

침산동 줄땡기기는 현재 전승되지 않는다. 1941년 대구 최초로 침산동 일대에 공업지구가 조성되면서 직물 공장들이 들어섰고, 1965년 침산동 일대는 대구의 제3공업단지로 조성되었다. 현재는 침산동은 우리나라 안경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농경 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침산동 줄땡기기는 자연스레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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