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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506
한자 雲谷書堂
분야 종교/유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367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도성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운곡서당 건립
최초 설립지 운곡서당 -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367 지도보기
성격 서당
설립자 이승연의 문인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었던 서당.

[개설]

운곡서당은 구한말 애국지사이자 성리학자인 지강(芝岡) 이승연(李昇淵)[1861~1933]의 강학소인데, 1932년 이승연의 후학과 인근 선비들이 초가를 기와 지붕 형태의 건물로 고쳐 지었다. 매년 음력 3월에 운곡서당에서 이승연의 제사를 지낸다.

이승연의 본관은 광주로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이미 사서삼경과 제자백가를 통달했고 실학·천문·지리·의학 등에 정통하여 당시 사림에서 이름이 있었다. 이러한 까닭에 한때 흥선대원군이 이승연을 초청하여 시국에 대한 자문을 구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일제에 의하여 나라가 강제 합병되자 이승연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1915년 2월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19년에는 유림의 파리장서운동을 적극 지원하였으며, 중국의 신해혁명 지도자 쑨원[孫文]과도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1982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으며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설립 목적]

운곡서당은 유학 교육 및 독립 정신 고취를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32년에 기존 초가 형태의 강학소 자리에 현재의 형태로 새로 지었다. 이후 보수를 거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황]

운곡서당은 정면 5칸·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에서 마주 보았을 때 좌측에서부터 2칸 방·2칸 대청·1칸 방이며, 전면에는 반 칸 툇간을, 건물 좌우 측면에는 쪽마루를 달았다. ‘지강유거(芝岡幽居)’라는 현판과 1963년에 쓰여진 중건(重建) 소지, ‘운곡서당’ 현판이 있다. 담장 밖에는 1973년에 세워진 묘비와 사단법인 대구문화재단이 세운 안내판이 있다. 여러 차례의 보수를 하였으나, 현재는 기와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동쪽 담장이 무너지는 등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 이승연 관련 문적(文籍)들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관계로 태워져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유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지강 이승연의 강학소였으나 현재는 훼손이 계속 되고 있어 보존 대책이 필요한 상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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