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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3026
한자 崔明海
영어공식명칭 Choi Myeonghae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장세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연표보기 - 최명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최명해 흥업단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1년~1922년 - 최명해 군자금 모집 활동 전개
출생지 경주 - 경상북도 경주시
거주|이주지 동산동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 지도보기
활동지 활동지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흥업단 단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최명해(崔明海)[1897-?]는 1897년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태어났다. 대구 시장정(市場町)[현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에 거주하며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흥업단(興業團) 특파원 이만준(李萬俊)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지린성[吉林省] 푸쑹현[撫松縣]에서 군정서 부속 독립운동 단체 흥업단이 결성되었다. 흥업단은 무장 독립전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군자금 모집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1920년 11월 단장 김호(金虎)[일명 김호익(金虎翼)]와 외교부장 김성규(金星奎)는 이만준에게 20만 원의 자금 조달 임무를 부여하였다. 이만준은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한교공회(韓僑公會) 회장 손경헌(孫庚憲)으로부터 경상북도와 충청도 사정에 밝은 김인제(金仁濟)·최성기(崔聖基)·황문익(黃文益) 등 3명을 소개받은 뒤 관련 서류와 무기를 소지하고 1920년 말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이만준 등은 대구와 밀양·양산 등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영남 지역 인사들을 대상으로 동지 포섭과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최명해는 1921년 이만준의 권유로 박수의(朴守義)·권정락(權政洛) 등과 함께 흥업단에 가입하였고, 대구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는 데 적극 협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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