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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493
한자 權正洛
영어공식명칭 Kwon Jeongra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7년연표보기 - 권정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2년 - 권정락 흥업단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3년 10월 16일 - 권정락 대구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로 석방
출생지 달성동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흥업단 단원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권정락(權正洛)[1887~?]은 188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서 태어났다. 1922년 흥업단(興業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 이후 윤세복(尹世復)·김혁(金赫)·김호(金虎) 등 중국만주에 거주하던 독립운동가들은 지린성[吉林省] 푸쑹현[撫松縣]에서 흥업단을 설립하였다. 흥업단은 겉으로는 산업 진흥과 한국 동포 간의 친목 도모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항일 무장투쟁을 행동 목표로 정하고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국내로 잠입한 흥업단 단원들은 푸쑹현에 있던 백산학교(白山學校) 학생 모집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대구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던 권정락은 홍종락(洪鍾洛)·권충락(權忠洛)의 권유를 받고 흥업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경상북도 봉화군으로 군자금을 모금하러 가던 이만준(李萬俊)·김우창(金佑昌)·이재술(李再述)이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면서 권정락을 비롯한 흥업단 단원들도 연이어 체포되었다. 권정락은 1923년 10월 16일 「대정8년 제령 제7호」와 「총포화약류취체령」 위반, 강도 및 상해 혐의로 대구지방법원에 기소되었으나 11월 22일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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