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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95
한자 禹洪善
영어공식명칭 Woo Hongsun
이칭/별칭 우동흡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0년 3월 6일연표보기 - 우홍선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50년 5월 - 우홍선 언양농업전수학교 1년 수료
수학 시기/일시 1950년 9월 7일 - 우홍선 육군종합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50년 9월 7일 - 우홍선 육군 소위로 임관
활동 시기/일시 1958년 7월 31일 - 우홍선 육군 대위로 예편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우홍선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64년 - 우홍선 1차 인민혁명당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75년 4월 8일 - 우홍선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몰년 시기/일시 1975년 4월 9일연표보기 - 우홍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4년 4월 9일 - 민청학련사건 20주년 기념식 및 인혁당 추모제 개최
추모 시기/일시 2005년 4월 8일 - 인혁당 희생자 30주기 추모제 개최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1월 23일 - 우홍선 서울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5년 11월 - 우홍선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
출생지 동부리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
학교|수학지 언양농업전수학교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학교|수학지 육군종합학교 - 부산광역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묘소 낙원공원묘지 - 경기도 파주시 송화로 118[야동동 2-1]
성격 사회운동가|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희생자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중앙위원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이자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희생자.

[개설]

우홍선(禹洪善)[1330~1975]은 1964년 제1차 인민혁명당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박정희 정권이 유신 반대 시위를 잠재우기 위하여 1974년에 조작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되었다. 우동흡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우홍선은 1330년 3월 6일 지금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50년 5월 언양농업전수학교 1학년을 수료하고 육군종합학교에 입학하였다. 1950년 9월 7일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소위로 임관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였고, 1958년 7월 31일 대위로 예편하였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사회당의 외곽 청년 조직인 통일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국민들의 통일 열기를 모으기 위하여 1961년 2월 25일 도예종(都禮鍾) 등과 함께 광복 이후 최대 규모의 통일운동 단체인 민족자주통일협의회를 결성하고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1964년 박정희 정권은 전국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저지하기 위하여 통일운동가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용공 집단이자 학생들을 배후 조종하는 조직으로 몰아 1차 인민혁명당사건을 조작하였다. 우홍선은 이때 도예종 등과 함께 구속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언도받았다.

1972년 10월 17일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유신 반대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1974년 4월 3일 「대통령 긴급조치 4호」를 공포한 후 1964년 1차 인민혁명당사건 관련 인사들을 체포하여 고문과 강압수사 끝에 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의 배후 조직으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을 조작하였다. 우홍선은 핵심 관련자의 한 사람으로 구속되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하재완(河在完)·송상진(宋相振)·김용원(金鏞元)·이수병(李銖秉)·여정남(呂正男)·서도원(徐道源)·도예종과 함께 사형을 언도받았고, 다음 날인 4월 9일에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묘소]

우홍선의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야동동 2-1 낙원공원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재심 공판에서 우홍선을 비롯한 희생자 8인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되었다. 2015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인민혁명당사건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1994년 4월 9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민청학련사건 20주년 기념식 및 인혁당 추모제가 거행되었으며, 2005년 4월 8일 명동성당에서 인혁당 희생자 3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2006년 4·9인혁재단이 설립되어 매년 4월 9일을 전후하여 희생자를 기리는 ‘4·9 통일열사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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