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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779
한자 呂正南
영어공식명칭 Yeo Jungna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44년 5월 7일연표보기 - 여정남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59년 2월 - 여정남 경북중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62년 2월 - 여정남 경북고등학교 졸업
수학 시기/일시 1962년 3월 - 여정남 경북대학교 정치학과 입학
활동 시기/일시 1971년 4월 25일 - 여정남 정진회 필화사건으로 구속
활동 시기/일시 1971년 10월 16일 - 여정남 위수령 위반으로 경북대학교에서 제적
활동 시기/일시 1974년 4월 17일 - 여정남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 위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검거
활동 시기/일시 1975년 4월 8일 - 여정남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몰년 시기/일시 1975년 4월 9일연표보기 - 여정남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 1월 23일 - 여정남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무죄 판결
추모 시기/일시 2010년 4월 10일 - 경북대캠퍼스 내 여정남공원 조성
추모 시기/일시 2013년 4월 13일 - 여정남기념사업회 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5년 11월 - 여정남 서울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
출생지 전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경북대학교 - 대구광역시 북구 검단공단로 75[산격동 1771]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서울 - 서울특별시
묘소 현대공원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낙산로3길 34-22[낙산리 산152]
성격 학생운동가|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희생자
성별 남성

[정의]

대구 출신의 학생운동가이자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희생자.

[개설]

여정남(呂正南)[1944~1975]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 반대 시위를 잠재우기 위하여 1974년에 조작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에 연루되어 희생되었다.

[가계]

여정남의 아버지는 여이섭이고, 어머니는 윤태영이다. 형은 여규흠·여규영이고, 누나는 여군자, 동생은 여규정·여규환이다.

[활동 사항]

여정남은 1944년 5월 7일 대구시 중구 전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서 태어났다. 종로국민학교와 경북중·고등학교를 거쳐 1962년 3월 경북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투쟁, 1969년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주도하였다. 이념 서클 정사회정진회에서 활동하였는데, 1971년 ‘정진회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다.

1971년 10월 15일 박정희 정권은 ‘위수령’을 선포하였는데, 특히 각 대학에 있는 모든 서클 활동 중지와 학생운동 세력을 철저히 배제할 것을 명령하였다. 10월 16일에 여정남은 이념 서클 활동과 학생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세 명의 동료 학생들과 함께 경북대학교에서 제적되었다.

여정남은 1973년 11월 5일 경북대학교에서 지역 최초로 열린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한 뒤 상경하여 서울대학교의 이철·유인태와 함께 유신 반대 시위를 전국으로 확산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1974년 4월 3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 명의로 제작된 「민중·민족·민주선언」과 「민중의 소리」라는 선언문이 뿌려지면서 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유신 반대 시위가 일제히 전개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4월 3일 밤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를 공포하고 시위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1,024명을 정부 전복을 기도한 공산주의 추종 세력으로 몰아 체포하고 그중 180명을 구속하였다. 또한 배후 조직으로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라는 단체를 조작하였다.

여정남은 1974년 4월 17일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강압수사 끝에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하재완(河在完)·우홍선(禹洪善)·김용원(金鏞元)·이수병(李銖秉)·송상진(宋相振)·서도원(徐道源)·도예종(都禮鍾)과 함께 사형을 언도받았고, 다음 날인 4월 9일에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묘소]

여정남의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낙산리 산152 현대공원 제1묘원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인민혁명당재건위원회사건’ 재심 공판에서 여정남을 비롯한 희생자 8인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다. 2015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인민혁명당사건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1994년 4월 9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민청학련사건 20주년 기념식 및 인혁당 추모제가 거행되었으며, 2005년 4월 8일 명동성당에서 인혁당 희생자 3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2006년 4·9인혁재단이 설립되어 매년 4월 9일을 전후하여 희생자를 기리는 ‘4·9 통일열사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2010년 4월 10일 경북대학교 캠퍼스 내에 조성된 여정남공원에서 매년 4월 9일을 전후하여 추모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추모제 진행은 2013년 결성된 여정남기념사업회가 맡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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