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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554
한자 金英道
영어공식명칭 Kim Yeongdo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8년 2월 27일연표보기 - 김영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2년 2월 - 김영도 항일 비밀결사 결사대 결성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43년 12월 - 김영도 일제 경찰에게 체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 김영도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몰년 시기/일시 1994년 3월 8일연표보기 - 김영도 사망
출생지 칠성동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학교|수학지 계성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영도(金英道)[1928~1994]는 1928년 2월 27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계성학교(啓聖學校) 재학 중 교내 항일 비밀경사 조직인 결사대(決死隊)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김영도는 1942년 2월 계성학교 학생들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밀파한 박윤경(朴潤璟)을 만나 독립 방안을 논의하였다. 학생들은 광복을 위한 투쟁을 혈서로 맹세하였으며, 결사대를 조직하여 전국 주요 도시에서 항일 의지를 담은 격문 투쟁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1943년 7월 김영도와 결사대는 전시체제기 신사참배의 필수 장소였던 달성공원 내의 대구신사를 불태우기로 결의하였다. 당시 계성학교대구신사가 있는 달성공원과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또한 대구신사에는 일제 당국이 국체와 국민정신 함양을 위하여 건립한 국체명징관(國體明徵館)이 있었다. 대구신사는 전시체제기 황국신민화 정책과 전시 동원 정책에 적극 참여를 서약하는 황민내셔널리즘의 실행 공간이었다. 그러나 1943년 12월 결사단의 활동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김영도를 비롯한 단원들이 체포되었다. 김영도는 단기 1년 6월, 장기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4년 3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영도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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