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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231
한자 土姓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본욱

[정의]

조선시대 이전 대구광역시에 살고 있었던 토착 성씨 또는 대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

[대구의 토성]

조선 초에 대구부는 본부(本府)와 속현인 수성현(壽城縣)·하빈현(河濱縣)·해안현(解顔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는 대구부의 토성(土姓)으로 백(白)·하(夏)·배(裵)·서(徐)·이(李)를 들고 있다. 수성현에는 빈(賓)·라(羅)·조(曺)·혜(嵇), 하빈현에는 신(申)·이(李)·송(宋), 해안현에는 모(牟)·백(白)·하(河)·신(申)·정(丁)을 토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대구부의 토성을 모두 합하면 15개이다[중복 성씨 1개].

대구부의 성씨 중 하씨는 본관이 달성(達城)이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대구군(大丘郡)」 편에는 고려 명종 때 인물인 하광신(夏光臣)의 효행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달성하씨(達城夏氏)는 세대가 계속 이어져 지금의 수성구 만촌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서씨 또한 본관이 달성이며, 서균형(徐鈞衡)이 「토성명현(土姓名賢)」으로 『경상도속찬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달성서씨(達城徐氏)는 세종 때 달성(達城)을 나라에 헌납한 서침(徐沈)서침의 7대손 서사원(徐思遠) 등이 선행과 학행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가구 수도 많고 북구 산격동수성구 만촌동 등지에 지금까지 세거하고 있다.

배씨의 본관은 달성이며, 충렬왕 때 인물인 배정지(裵廷芝)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인물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대구읍지』에는 성종 때 배익신(裵益臣)이 과거에 급제한 기록이 보인다. 달성배씨(達城裵氏)는 동구 및 북구, 대구에 인접한 경상북도 칠곡군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백씨와 이씨는 『동국여지승람』 인물조 등에 기록된 인물이 없어 본관이나 세거지 등을 알 수 없다.

빈씨는 본관이 수성(壽城)인데, 빈우광(賓宇光)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인물조에 보인다. 수성빈씨(壽城賓氏)는 동구 지역에 살고 있으며 가구 수가 많지 않다.

라씨(羅氏)는 수성을 본관으로 하는데, 현재 대구에 거주하는 가구수는 많지 않고 인근 지역인 고령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조씨는 효자 조희삼(曺希參)이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기록되어 있는데, 본관을 알 수 없다.

송씨는 『대구읍지(大丘邑誌)』「능묘(陵墓)」 편에 ‘증 좌의정 송선(宋璿)의 묘’라고 하고 “서하동(西下洞) 능곡(陵谷)에 있다고 하였다. 공은 의영고사(義盈庫使) 하후승(夏侯勝)의 딸에게 장가들어 1남 1녀를 두었다. 1녀는 여흥부원군 민제(閔霽)에게 시집을 갔는데, 삼한국대부인 원경왕후(元敬王后)[태종의 비]를 낳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성씨는 전하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본관이나 세거지 등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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