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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대구 미군 진주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646
한자 解放 後 大邱 美軍 進駐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미군 진주

[정의]

해방 후 대구에 군정 실시를 위하여 미군이 주둔한 사건.

[역사적 배경]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이 승리하고 패망한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기 위하여 1945년 9월 8일에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여 총독부 대표로부터 공식 항복을 받고, 9월 9일에 38선 이남에 군정을 실시한다는 미군 사령부의 명령 제1호를 발표하였다. 그 후 미군은 대구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주둔하였다.

[경과]

미군정 실시 이후 1945년 9월 24일 밤 8시에 대구에 존스 대위 이하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미군 선도 부대가 도착하였다. 미군 선도 부대는 9월 25일에 경북 도청사조선은행 대구 지점을 거쳐 시내 곳곳을 시찰한 다음 성경학원에서 열린 미군 환영 축하회에 참석하였다. 미군 선도 부대는 9월 26일에 서울로 복귀하였다. 미군이 대구에 공식적으로 진주한 것은 1945년 10월 1일이었다. 10월 1일에 미육군 보병부대는 전차와 트럭에 탑승한 채 대구 시민의 환영을 받으면서 옛 일본군 영사와 관구사령부에 주둔하였다. 대구 주둔 미군은 1945년 10월 2일부터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하고 경북도청, 대구부청 및 시내 주요 관공서를 접수하였다. 미군정은 1945년 10월 13일자로 김대우 경북지사와 일본 관리들을 정식으로 파면 조치하고, 10월 19일에 에드윈. A. 헨 미군 대령을 경북지사로 임명하였다. 대구 주둔 미군 공식 환영 행사는 1945년 11월 10일에 대구 키네마구락부에서 대구합창단, 조택원무용단의 공연 속에 치러졌다.

[결과]

1945년 10월 1일 대구에 미군이 진주한 것은 사실상 미군정이 실시되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10월 19일 미군정의 헨 대령이 경북지사로 취임하면서 미군정이 공식적으로 실시되었다.

[의의와 평가]

해방 후 미군의 대구 진주는 대구에 주둔한 일본군이 무장해제를 당하고 대구 지역에서 미군정이 실시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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