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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562
한자 自制團
이칭/별칭 자성회,자제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9년 4월 6일연표보기 - 자제단 결성
성격 친일 관변단체

[정의]

1919년 4월 대구광역시에서 3·1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조직된 친일 관변 단체.

[개설]

자제단(自制團)은 조선총독부가 3·1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1919년 4월 조직한 단체이다. 친일파를 앞세워 조직된 자제단은 특히 남한 지방에 집중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자성회(自省會)’, ‘자제회(自制會)’라고도 하였다. 대구에서는 1919년 3·8 서문시장 만세 시위를 계기로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에 3·1운동이 확산되자 일제는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조선인 친일파와 유지들로 자제단을 결성하였다. 대구의 자제단자제단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먼저 조직되었다.

[설립 목적]

자제단3·1운동 참가자를 검거하고 첩보활동 및 대민 설득을 통하여 민중을 만세운동에서 격리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변천]

1919년 4월 6일 결성된 대구 자제단에 이어 6월에는 충청남도 지역에서도 결성되었고 1919년 7월까지 충청북도, 전라북도, 울산, 수원 등 전국으로 확대되어 1919년 12월까지 활동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자제단 활동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한 자제단은 대구와 경상북도 각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연설회를 개최하였다. 자제단 단장은 대구읍성 철거를 주도한 경상도관찰사 서리 겸 대구군수를 지낸 박중양이었다. 발기인은 이병학(李柄學), 이장우(李章雨), 정해붕(鄭海鵬), 이일우, 이영면, 정재학, 한익동, 김홍조, 서경순, 장상철, 서철규, 서병원 등이었다. 자제단 구성원 대부분은 대구 지역에서 근대 자본가로 성장한 대부호들로서, 대구 지역 유지와 금융 자본가들이었다. 또한 1917년 결성된 친일 단체 대구 교풍회 회원들과 대구부윤의 자문 기구인 대구부협의회 의원들로서, 친일 단체나 친일 관변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인물들이었다.

자제단3·1운동 참가자 검거 및 첩보활동은 민족운동을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었다. 이에 3·1운동 이후 결성된 비밀결사 조직인 혜성단은 1919년 4월 13일 박중양에게 “시세에 적응하기 위하여 자제단을 설립하고 다수의 사람을 강제로 권유하여 입회시키는 것은 조선 민족으로서 너그럽게 용서하여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암살하겠다”라는 협박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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