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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903
한자 李章雨
영어공식명칭 Lee Jangu
이칭/별칭 이와무라 쇼우[岩村章雨]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1년 9월 15일연표보기 - 이장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월 29일 - 이장우 금연상채회 평의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8년 8월 - 이장우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대례기념장 수훈
활동 시기/일시 1936년 - 이장우 경북미곡통제연합회 부회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이장우 조선나예방협회 평의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43년 8월 3일~1944년 1월 16일 - 이장우 중추원 참의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44년 1월 16일연표보기 - 이장우 사망
출생지 하서동 - 대구광역시 중구 하서동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대구 - 대구광역시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친일반민족행위자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중추원 참의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이장우(李章雨)[1871~1944]는 1871년 9월 15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하서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이후 대구에서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친일반민족행위를 이어 갔다. 창씨명은 이와무라 쇼우[岩村章雨]이다.

[활동 사항]

이장우는 1898년 5월 봉상주 주사를 계기로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고, 1899년 7월 대구지방대 보병 참위를 거쳐 1903년 3월 대구 진위대 제3연대 1대대 부위를 지냈다. 1906년 3월 대구사범학교 설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6월에는 대구농공은행의 설립에 참여하고 감사로 선임되었다. 이장우는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될 때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장우는 1912년 12월 무렵 대구은행 설립을 위한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설립 이후 감사역을 맡았다. 1913년 5월 대구지주조합 창립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15년 경일은행 설립에 참여하고 감사역으로 선임되었다. 1919년 11월 일본인 주도의 대구상업회의소의 상무위원, 1919년 10월 대구주조주식회사 이사, 1920년 주식회사 대동사의 주주로 경제 활동을 벌였다. 이장우는 1934년 조선농회 통상의원과 경상북도 농회 부회장, 1936년 경북미곡통제연합회 부회장, 1938년 조선나예방협회 평의원을 역임하였다.

이장우는 1918년 조선총독부 지방기구의 자문기관인 대구부협의회 의원이 된 이래 경상북도 평의원을 지냈다. 1919년 3·1운동대구 자제단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방해하였으며, 1928년 8월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다. 이장우는 일제의 전시 동원 체제에 협력하여 1941년 9월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43년 8월 3일부터 1944년 1월 16일까지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를 지내며 일제에 협력하였다. 이장우는 1944년 1월 16일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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