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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275
한자 大邱府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0년 10월 1일연표보기 - 대구부 설치
해체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대구부 폐지
개칭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대구부에서 대구시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81년 7월 1일연표보기 - 대구시에서 대구직할시로 승격
개칭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연표보기 - 대구직할시에서 대구광역시로 개칭
성격 제도|지방제도
설립자 총독부

[정의]

1910년대 대구광역시에 설치된 지방 행정 기관.

[개설]

1910년 한일합병조약 체결 이후 조선총독부 관제와 함께 도·부·군의 지방 관제가 시행되면서 1910년 10월 대구군(大邱郡)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종래의 대구이사청은 폐지되었고 대구부대구이사청의 사무를 경상북도와 나누어 받아 대한제국 시기 29개 면, 260개 동의 행정구역을 관할구역으로 하였다. 당시 대구부의 호수(戶數)는 1만 9174호 정도였다.

[변천]

1910년 10월 대구이사청이 폐지되고 대구군대구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11년 9월 21일 대구일본거류민단토지임시조사국 대구출장소는 경상북도 장관에게 ‘시가지 동명 변경 선청서’를 제출하였다. 내용은 대구의 동상면과 서상면을 폐지하고 새로이 대구면으로 할 것과 대구면의 동명을 일본식 정명(町名)으로 사용할 것이었다. 경상북도 장관이 이를 받아들여 1911년 11월 14일 「경북고시」 제38호가 공포되면서 대구면은 54개의 정(町)으로 구성되었다.

1913년 10월 30일 조선총독부 제령 제7호로 「신부제」가 공포됨에 따라 1914년 조선의 지방 관제는 전면 개편되었다. 대구부의 행정구역은 대구면으로 설정되었고, 여타 면은 달성군으로 개편되었다. 대구부는 순전한 도시지역만을 관할하는 기초 단위가 되었다. 대구부는 1917년 2월 5일 공포된 「조선총독부령」 제9호에 따라 1917년 4월 1일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과 봉덕동의 일부를 편입하였다.

1937년 7월 총독부 고시 제186호로 공포된 대구 도시계획 관련 법령에 따라 달성군 성북면 4개 동, 달서면 중 10개 동, 수성면 전체 14개 동을 편입하였다. 이로써 대구부의 행정구역은 1911년 대비 거의 2배 정도 확대되었다. 대구부는 광복 후인 1947년 4월 1일 「경상북도령」으로 일본식 정명을 한국 전통의 동명으로 개정하였다. 대구부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인 1949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폐지되고 대구시로 개칭되었다. 1981년 7월 1일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월배·성서·공산 지역을 비롯하여 칠곡·안심·고산 지역을 편입하였고, 1995년 1월 1일 달성군 전역을 편입하면서 대구직할시에서 대구광역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의 지방 관제 개편은 표면적으로는 ‘일선 융화’를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차별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조선의 지방을 효과적으로 지배 통제하고, 일제의 지배 정책에 순응하게 하여 일본 자본주의의 이익을 담보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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