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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골프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230
한자 大邱-場
이칭/별칭 대구골푸장,대구꼴푸장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대구골프장 건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7년 9월 23일 - 대한민국 최초의 전조선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 개최
최초 설립지 대구골프장 -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비슬산지도보기 일대
성격 운동시설

[정의]

1924년 대구 지역 최초로 만들어진 골프장.

[설립 목적]

일제는 1920년대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각 지역에 오락 시설, 스포츠시설 등을 대규모로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를 시작으로 대구 지역에는 대구골프장을 비롯하여 대구공설운동장[대구운동장], 대구경마장, 대구수영장 등이 설치되었다.

[변천]

대구골프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아리요시 주이치[有吉忠一]의 지시로 설립되었다. 1924년 3월 6일 아리요시 주이치 주최로 경상북도 도지사 관저에서 열린 골프장 건설 회의에서 골프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23만 1000㎡에 이르는 골프장 부지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서재조가 기부하기로 하였다. 골프장 건설 및 제반 설비 문제는 대구부윤 마쓰이 노부시케[松井信助]가 경성에 상경하여 효창원골프장을 참고하여 해결하였다.

1924년 5월 골프장 신설 계획이 발표된 뒤 본격적으로 대구골프장 건설이 시작되었다. 대구골프장은 1924년 5월부터 1924년 8월까지 4개월 만에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외곽 비슬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일대에 건설되었다. 대구골프장은 회원제 골프장으로 회원의 추천이 있어야 이용할 수 있었다. 회원 수는 50여 명이었고, 회비는 월 2원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24년 8월 31일 일본 천장절을 기념하여 대구골프장에서 골프 대회가 열렸다. 경성에서 내무국장 오쓰카[大塚] 이하 25명, 부산에서 5명, 대구에서 약 50명이 대회에 참가하여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는 연습을 하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시합을 열었다. 1등부터 4등까지 모두 경성에서 온 사람들이 차지하였다. 1등은 내무국장 오쓰카, 2등은 나카무라 마코토[中村誠], 3등은 조선총독부 사회원 과장 야지마[矢島], 4등은 나카무라[中村]였다. 1937년 9월 23일에는 대구골프장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전조선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현황]

대구골프장의 부지는 23만 1000㎡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골프장인 경성 효창원골프장의 장점을 참고하여 코스를 설계하였고, 골프장의 규격은 9홀[2.6㎞, 파35]이었다. 대구골프장의 회원이 늘어나자 더블 티 시스템으로 전체 길이 약 5㎞, 파69의 18홀을 갖춘 코스로 발전하였다.

대구골프장이 개장하면서 대구골프회[이칭 대구골프구락부]도 결성되었다. 대구골프회가 주축이 되어 대구골프장을 운영 및 관리하였다. 대구골프회의 조선인 회원은 박흥갑, 이창근, 서병조, 정운용, 서연식, 주병갑 등 13명이었다. 이창근과 서병조는 이사, 정운용과 서연식은 경기 위원, 박흥갑은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대구골프회는 매년 유하컵, 합동은행, 『대구일보』, 『조선민보』, 부산 대항 등 크고 작은 대회를 개최하였다. 1938년에는 30개의 대회가 개최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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