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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7·27인민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97
한자 大邱 七·二七人民大會
이칭/별칭 미소공위축하인민대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7년 7월 27일연표보기 - 대구 7·27인민대회 개최
발생|시작 장소 달성공원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293-4 지도보기
성격 사회운동
관련 인물/단체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위원회

[정의]

1947년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위원회가 개최한 정부수립 촉진대회.

[개설]

대구 7·27인민대회를 개최한 민주주의민족전선은 인민 대회의 의미에 대하여 ‘조국 흥망의 결정적 사명을 가지는 것’이라고 중요하게 판단하였다.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모스크바삼상회의가 갖는 역사적 의의에 대하여 첫째, 조국 재건의 유일한 옳은 노선, 둘째, 조선의 자주독립은 민주주의적 제 과업의 완전한 실천을 통하여 실현되는 것, 셋째, 조선은 국제적으로 원조 협력이 있는 데에서만 자주독립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역사적 배경]

1947년 6월 25일 미소공동위원회가 속개되자 민주주의민족전선은 1947년 7월 27일 오전 10시를 기하여 남한 전역에서 ‘미소공동위원회 경축 민주임시정부수립 촉진 인민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대구 7·27인민대회민주주의민족전선의 인민대회 개최 결정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울에서 열린 7·27인민대회에는 미·소 양 대표가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경과]

대구 7·27인민대회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위원회 주최의 ‘미소공위[미소공동위원회] 축하 인민대회’라는 이름으로 1947년 7월 27일 오전 10시 수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達城公園)에서 열렸다.

대구 7·27인민대회는 10시 20분 박중조(朴重朝)의 개회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대회 순서는 애국가 제창, 묵상, 해방의 노래,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북위원회 김정규(金正奎)의 개회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약 20여 명에 의하여 우익 테러가 자행되었고, 경비 중이던 경찰에게 모두 검거되었다.

대구 7·27인민대회는 11시에 속개되어 참가한 각 정당 대표들과 함께 결의 사항을 채택하였다. 결의 내용은, 반탁 유령 단체를 제외하고 조속히 공위[미소공동위원회]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촉진사와 각 사회단체 대표의 결의 표명, 대회 결정서 통과, 미소공동위원회의 미국 수석대표 브라운 소장에게 보내는 메시지 채택 등이었다. 인민대회는 만세 삼창을 마지막으로 대회를 마쳤다.

[결과]

수만 명이 참가한 대구 7·27인민대회는 우익 테러를 제외하고는 준비한 모든 순서를 안정되게 진행하여 마무리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 7·27인민대회는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 과업 내에서 모스크바삼상회의에 따른 미소공동위원회의 중요성을 확인한 대회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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