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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신총동원과 대구교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57
한자 國民精神總動員- 大邱敎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 단체|친일 단체

[정의]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법」 제정 이후 대구 기독교계의 동향.

[개설]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법」 제정 이후 조선총독부는 1939년 신의주에서 열린 제28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 결성’을 강요하였다. 대구 지역 기독교계 목사와 장로 등 10여 명이 참석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이 결성되었다.

대구의 기독교계는 1939년 12월 13일 성경학원에서 개최된 제38회 경북노회 정기회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 연맹 결성식’을 개최하였다. 결성식은 국가 봉창·궁성요배·황국신민서사 암송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취지와 규약 그리고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후 대구 지역 기독교계는 일제의 전시 동원 체제에 부응하며 친일 협력에 나섰다.

[설립 목적]

대구 지역 기독교계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 연맹을 결성한 목적으로 내선일체, 거국일치, 국민정신 총동원을 내세웠다. 대구의 기독교계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 연맹을 통하여 강연회·전도회·사경회·부흥회·좌담회 등을 열고, 인쇄물의 작성·배포·영화 상영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변천]

1939년 12월 13일 결성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 연맹은 일제의 정책 변화에 따라 1940년 12월 11일 국민총력경북노회연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이 결성됨에 따라 대구 기독교가 속한 경북노회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의 지맹(支盟)이 되면서 유명무실하여졌다. 이후 대구 지역의 교회는 애국반을 조직하고 결과를 인근 경찰서나 파출소에 신고하여야 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 연맹은 각 교회에 황도실천(皇道實踐)·전도보국(傳道報國)이라는 시국 표어를 붙이고, 신사참배·매월 첫 주일의 애국 예배·국가 행사 장려·궁성요배·정오 묵도·방첩 유의·물자 절약·특별 집회 때 국가 의식 거행 등의 시행을 장려하였다.

또한 대구 지역 교회는 일제의 놋 제품[유기(鍮器)] 헌납 장려에 주일예배 등을 활용하여 선전하는 등 일제의 전쟁 정책에 부응하였다. 조선총독부가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이 봉천(奉天) 전투에서 승리한 날을 기념하는 육군기념일을 기념한다는 구실로 1전 헌금을 강요할 때 일정하게 부응하였다.

[의의와 평가]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 연맹은 일제의 국민정신총동원 정책 강요에 의하여 결성되었지만 일제의 전쟁 동원 정책에 부응하며 기독교 본연의 자세와 태도를 상실한 채 친일 협력에 앞장서는 현상을 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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