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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읍지』 「대구부읍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221
한자 慶尙道邑誌 大丘府邑誌
영어공식명칭 Daegu-bu Eupji in Gyeonsang-do Eupji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32년연표보기 - 『경상도읍지』「대구부읍지」 간행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
권책 20책
행자 10행 20자
규격 35.0×22.6㎝
권수제 대구부읍지

[정의]

1832년경 간행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경상도 대구도호부의 읍지.

[편찬/간행 경위]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대구부읍지(大丘府邑誌)」 는 1832년(순조 32)경 간행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제1책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도읍지』경상감영(慶尙監營)에서 편찬한 도지(道誌)로 개별 읍지의 항목과 서술 방식이 통일되어 있다.

『경상도읍지』는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한 편찬 시기와 간행 경위는 알 수 없지만, 호구(戶口)·전부(田賦) 항목은 1831년을 기준으로 하였고, 환적(宦蹟) 항목의 기록은 1832년을 넘지 않기 때문에 1832년경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형태/서지]

『경상도읍지』는 필사본 2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상도읍지』「대구부읍지」의 제일 앞에는 ‘대구지도’ 채색본이 첨부되어 있고, 내제는 ‘대구부읍지’이다. 크기는 세로 35.0㎝, 가로 22.6㎝이다.

[구성/내용]

『경상도읍지』 「대구부읍지」 는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 전부,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학교(學校), 관방(關防), 진보(鎭堡), 봉수(烽燧), 단묘(壇廟), 총묘(塚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 과거(科擧), 인물(人物), 제영(題詠), 비판(碑板), 책판(冊板)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관방, 진보, 도서, 목장은 항목이 있지만 해당사항이 없어 ‘무(無)’라고 기록되어 있다.

군명조에는 경상감영의 설치 연혁을 수록하였고, 산천 조에는 연구산(連龜山)·침산(砧山)·팔공산(八公山)·팔조령(八助嶺)·금호(琴湖) 등의 위치가 실려 있다. 풍속 조에는 “사대부는 순수하고 질박함을 숭상하고, 백성들은 농사와 길쌈을 생업으로 삼는다”라고 적혀 있다. 방리 조에는 동상(東上)·서상(西上)·성서(城西)·월배(月背) 등 34개 면의 부(府)에서의 거리와 소속 동리를 부기하였다.

호구 조에는 1831년 신묘식 원호 13,194호, 인구 56,962명, 남자 24,794명, 여자 32,168명을 수록하였다. 전부 조에는 양안에 기록된 밭 7,807결 23부, 논 4,976결 54부 4속 등 토지 결수와 전세·대동·균세·요역으로 구분하여 조세 정보를 기록하였다. 성지 조에는 달성(達城)과 부성(府城)의 규모와 시설, 남문루 상량문 등을 실었다. 임수 조에는 신천수(新川藪)·칠성암수(七星巖藪)의 위치와 유래 등을 설명하였다.

학교 조에는 향교·연경서원(硏經書院)·표충사(表忠祠)·낙빈서원(洛濱書院), 불우 조에는 동화사(桐華寺)·용연사(龍淵寺)·용천사(湧泉寺)·운흥사(雲興寺)·부인사(夫仁寺), 누정 조에는 하목당(霞鶩堂)·전귀당(全歸堂)·농연정(聾淵亭) 등이 실려 있다.

제언 조에는 송라제(松羅堤), 대동제(大同堤), 산대제(山大堤), 대불상제(大佛上堤) 등 저수지 94개소와 지인보(知仁洑), 신보(新洑), 개보(介洑), 선하보(船下洑) 등 방보(防洑) 87개소의 위치 등을 기록하였다. 장시 조에는 읍장[2·7일], 화원장[3·8일], 하빈장[5·10일], 풍각장[1·6일] 등이 있고, 고적 조에는 동수(桐藪), 성산(城山), 용봉사(龍鳳寺), 선사(仙槎) 등을 수록하였다.

환적 조는 영선생(營先生)과 읍선생(邑先生)으로 구분하여 역대 부임자의 이름 및 이부임 시기를 기록하였다. 영선생은 도부서사(都部署使), 안찰사(按察使), 제찰사(提察使), 도관찰사출척사(都觀察使黜陟使), 안렴사(按廉使), 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순으로, 읍선생에는 부사(府使), 판관(判官), 경력(經歷), 도사(都事), 영장(營將) 순으로 기재하였다. 인물 조에는 대구 출신 명사를 비롯하여 효자(孝子), 효부(孝婦), 열녀(烈女), 절의(節義)로 구분하여 주요 행적을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상도읍지』영조 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정조 대에 제작된 『해동여지통재(海東輿地通載)』의 영향을 받았으며, 『영남읍지(嶺南邑誌)』의 바탕이 된 읍지이다. 『경상도읍지』「대구부읍지」는 19세기 전반 대구도호부의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전부·군액·창고·제언 항목의 기록이 상세하고, 환적·과거·인물·비판 등 인물 관련 항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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