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87
한자 慶北社會運動者懇親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5년 2월 22일 -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 조직
최초 설립지 갑자구락부 - 경상북도 상주시
성격 사회운동

[정의]

1925년 2월 22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대구·경북의 서울계 사회운동단체들이 사회운동 확대와 세력 확장을 위하여 개최한 대회.

[개설]

1924년 12월 28일 경상북도 예천(醴泉)에서 영주, 안동, 상주 등지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회의를 열고 1925년 2월 22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를 열기로 결의하였다.

[설립 목적]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는 1925년 2월 22일 대구 제4청년회 등 대구와 경북 지역의 서울계 사회운동 단체들이 지역에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등 사회운동을 확대 발전시킬 방안을 모색함과 동시에 자파 세력의 확장을 도모할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는 경북 상주의 갑자구락부에서 대구 제4청년회를 대표한 윤우열(尹又㤠), 진평헌(陳平軒), 김리룡(金利龍) 등 대구·경북 사회운동 단체 대표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허일(許一)의 사회 아래 경과보고, 심사보고, 의안 채택 순으로 진행되었다.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는 노농운동, 형평운동, 민족운동, 사회운동 등에 관한 의안이 결의되었다. 특히, 1925년 무렵 조선 사회운동의 가장 뜨거운 문제였던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에 대하여 논의한 끝에 ‘운동선을 통일한다는 미명 아래 오히려 운동을 교란’시키는 것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성토할 것을 결정하였다. 아울러 참석자 중 대구청년회의 신철수가 경북노농운동자간친회에 참석한 것을 두고 참가 자격 심사를 벌여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에서 배제시켰다.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 참석자들은 간친회 하루 전인 2월 21일 서울계 대구·경북의 대표기관 겸 지도기관의 성격을 갖는 경북사회운동자동맹(慶北社會運動者同盟)을 발기하여 대구제4청년윤우열, 진평헌 등 7명의 준비위원을 선정하였다. 또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 참가자들은 간친회 다음날 대구의 제4청년회를 비롯한 14개 단체로 경북청년대회 발기회를 결성하고, 대구의 윤우열을 비롯한 13명의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는 대구와 경북의 서울계가 자기 세력의 통일과 확대 강화를 위함과 동시에 노동·농민운동 등 사회운동의 확대 및 발전을 꾀하기 위하여 개최되었다. 경북사회운동자간친회는 서울계가 앞서 안동에서 열린 경북노농운동자간친회에 대응하는 한편, 1925년 4월 서울에서 개최 예정의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를 성토하는 지방대회로서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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