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학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5880
한자 琴鶴樓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구본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25년연표보기 - 금학루 건립
훼철|철거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금학루 소실
원소재지 금학루 -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목조 와가

[정의]

조선 전기에 대구부 관아에 있던 누각.

[개설]

금학루(琴鶴樓)는 1425년(세종 7)에 대구부사(大丘郡事) 금유(琴柔)가 건립한 누각이다. 금학루는 대구부 관아 객사 동북쪽에 있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 수록되어 있는 대구부를 대표하는 누각이었다. 서거정(徐居正)「대구십영(大邱十詠)」 중 네 번째 시를 ‘학루명월(鶴樓明月)’이라 하고 금학루를 읊고 있다. 김조(金銚)[?~1455]는 금학루 기문에서 “옛 사람이 누각의 이름을 지을 때 지명이나 인명에 의거하는데, 금학루는 이 두 가지를 함께 취하였다”라고 하고 ‘금학루’의 금(琴)은 금호강(琴湖江)에서 취하였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직전에 7년간 대구부사를 역임하였던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일기(草澗日記)』에는 금학루에서 정무를 본 기록이 여러 곳에 보인다. 금학루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복원되지 못하였다.

[위치]

금학루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대구부 관아 객관 동북쪽에 있었다.

[변천]

금학루는 1425년에 건립되어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대구를 대표하는 누각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중건되지 못하였다.

[형태]

금학루의 형태는 목조 와가(木造瓦家)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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