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809
한자 尹福鎭
영어공식명칭 Yun Bokjin
이칭/별칭 윤복술(尹福述),김수향(金水鄕),김귀환(金貴環),파랑새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류덕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7년 1월 1일연표보기 - 윤복진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4년 - 윤복진 일본 니혼대학 전문부 문과 수학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윤복진 대구소년회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윤복진 소년문예단체 깃븜사 창립
활동 시기/일시 1925년 - 윤복진 잡지 『어린이』에 「별 따러 가세」 발표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윤복진 동요곡집 『중중 때때중』(등사판)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윤복진 동요집 『양양 범버궁』 출간
수학 시기/일시 1936년 - 윤복진 일본 호세이대학 법문학부 영문과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윤복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회 서기국 아동문학부 서기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윤복진 전국문학자대회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48년 - 윤복진 아동문화교육연구회 부위원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49년 - 윤복진 보도연맹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50년 - 윤복진 월북
몰년 시기/일시 1991년 7월 16일연표보기 - 윤복진 사망
출생지 대구 - 대구광역시
학교|수학지 니혼대학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학교|수학지 호세이대학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성격 아동문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조선문학건설본부 위원|조선문학동맹 아동문학부 사무장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아동문학가.

[개설]

윤복진(尹福鎭)[1907~1991]은 1907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윤복술(尹福述)이지만 윤복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잡지나 신문 등에는 김수향(金水鄕)·김귀환(金貴環)·가나리아·파랑새·백합화(白合花)·목동(牧童)·등대사 등의 필명을 사용하였다. 1924년 니혼대학 전문부 문과에서 수학하였으며, 1924년 호세이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광복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아동문학부 서기장을 지내다 전향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월북하였다.

[활동 사항]

윤복진은 1924년 대구소년회를 조직하였으며, 1925년 잡지 『어린이』에 「별 따러 가세」를 발표하였다. 1931년 동요곡집 『중중 떼떼중』, 1932년 동요집 『양양 범버궁』을 출간하였다.

윤복진은 1945년 조선문학동맹 아동문학위원회 서기장을 맡았다. 1945년 대구에서 결성된 좌익 계열 단체인 경북문화단체총연맹 경북도연맹[위원장 이응수]의 집행위원을 맡았다. 이듬해인 1946년에 개최된 전국문학자대회에 참가하였고, 조선문학가동맹 시부(詩部)에 조벽암·김기림·박아지·박세영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윤복진은 주로 좌익 문학단체에 이름을 올리고 활동하였지만, 1946년에 결성된 전조선문필가협회와 전국아동문학가협회 등 우익 단체에도 추대위원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또한 1948년 박목월·김동사 등이 위원으로 활동한 아동문화교육연구회[위원장 양린석]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윤복진은 1949년 동문사(童文社)가 주최하고 조선조형예술동맹과 조선문학가동맹이 후원한 아동 창작품 현상공모전에서 정지용·이태준·현덕 등과 함께 문학 부문 심사위원을 맡기도 하였다.

윤복진의 월북을 처음 밝힌 글은 정영진의 「동요시인 윤복진의 반전극」이다. 윤복진은 1949년 무렵에 보도연맹(保導聯盟)에 가입하여 전향하였으나, ‘적(敵) 치하의 부역’ 활동을 고민하다가 자의 반 강제 반으로 1950년에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복진은 1991년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윤복진은 동요 「별 따러 가세」[『어린이』3-9, 개벽사, 1925]가 방정환에 의하여 추천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동요·동시 창작을 시작하였다. 이후 1927년 윤석중 중심의 기쁨사 회원으로 있으면서 대구카나리아회를 주재하는 등 많은 동요와 동시를 발표하였다. 또, 윤복진의 작품에 박태준(朴泰俊)이 곡을 붙인 『중중 떼떼중』[1931]·『양양 범버궁』[1932]과 선집 『도라오는 배』[1934]·『물새발자옥』[1939] 등을 펴냈다. 광복 후에는 동요곡집인 『초등용가요곡집』[1946]을 발간하였다. 이 외에도 정순철(鄭淳哲)의 동요집 『참새의 노래』[1932]에 5편, 홍난파(洪蘭坡)의 동요곡집 『조선동요백곡집』[1930~1933]에 10편, 강신명의 동요곡집 『아동가요곡선삼백곡』[1936]에 51편, 박태준의 『박태준동요작곡집』[1949]에 15편, 권태호의 『국민가요집』[1949]에 4곡 등 수많은 작품이 실려 있다.

윤복진은 과옥과 더불어 서정적 세계에서 벗어나 평론 「민족문학 재건의 핵심-아동문학의 당면 과제」[『조선일보』, 1945. 11. 27.~1945. 11. 28.] 등을 발표하여 현실 참여의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북한 체제에 가담하기 전까지 일제강점기하의 동시 문단에 순수 동시 지향의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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