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262
한자 南龍翼
영어공식명칭 Nam Yongik
이칭/별칭 운경(雲卿),호곡(壺谷),문헌(文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충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28년연표보기 - 남용익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46년 - 남용익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648년 - 남용익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55년 - 남용익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 파견
활동 시기/일시 1656년 - 남용익 문과 중시 장원급제
활동 시기/일시 1667년 - 남용익 경상도관찰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68년 - 남용익 경상도관찰사 이임
활동 시기/일시 1689년 - 남용익 기사환국으로 유배
몰년 시기/일시 1692년연표보기 - 남용익 사망
출생지 한성 - 서울특별시
부임|활동지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지도보기
유배|이배지 명천 - 북한 함경북도 명천군
성격 문관
성별 남성
본관 의령(宜寧)
대표 관직 경상도관찰사|이조판서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문관.

[가계]

남용익(南龍翼)[1628~1692]의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복시(南復始)이고, 할아버지는 남진(南鎭)이다. 아버지는 남득붕(南得朋)이고, 어머니는 신복일(申復一)의 딸이다. 부인은 채성귀(蔡聖龜)의 딸 평강채씨(平康蔡氏)이며, 아들은 능주목사를 지낸 남정중(南正重)이다.

[활동 사항]

남용익은 1628년(인조 6) 한성[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646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48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시강원설서·성균관전적·병조좌랑·홍문관부수찬 등을 역임하였다. 1655년(효종 6) 통신사(通信使)에 종사관(從事官)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파견되었다. 1656년 문과 중시에 장원급제하여 당상관으로 진급한 뒤 대사간·대사성·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남용익은 1667년(현종 7) 8월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하여 1668년 4월에 이임하였다.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중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 있는 낙포(洛浦) 이종문(李宗文)이 세운 하목정(霞鶩亭)에 올라 시를 지었다. 남용익이 지은 시는 지금도 하목정에 걸려 있다.

남용익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명천(明川)[현 북한 함경북도 명천군]에 유배되었고, 1692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남용익의 저술로는 『기아(箕雅)』와 『부상록(扶桑錄)』, 문집인 『호곡집(壺谷集)』이 있다. 『기아』는 신라시대부터 조선 현종 때까지 497명의 시를 모아 엮은 책이다. 『부상록』은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상훈과 추모]

남용익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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