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선노농총동맹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178
한자 南鮮勞農總同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4년 3월 9일연표보기~3월 10일연표보기 - 남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
최초 설립지 만경관 - 대구광역시
성격 노농운동 단체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전국 차원 노농운동의 조직화를 위하여 조직된 노농단체.

[개설]

1924년 3월 9일부터 3월 10일까지 이틀간 대구의 만경관(萬慶官)에서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 개최를 함으로써 남선노농총동맹(南鮮勞農總同盟)이 조직되었다. 남선노농총동맹은 조선노농연맹회가 전국 차원 노농운동의 조직화를 위하여 1924년 1월 경남 진주의 경남노농운동자간친회, 1924년 3월 초 전남 광주의 전라도노농연맹에 이어 결성한 노농운동 조직이었다.

[설립 목적]

남선노농총동맹은 지역의 역량을 집결시켜 노농계급에 기초한 전국적 노농운동 조직을 창립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의 성사를 위하여 대구노동공제회가 본부 역할을 하고, 대구노동공제회정운해를 비롯하여 서정희, 김종범 등이 창립준비위원으로 활약하였다.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은 ① 우리는 단결의 힘으로써 노농계급의 해결을 기한다, ② 우리는 완전무결한 사회의 실현을 기하는 동시에 각각의 복리 증진과 생활향상을 도모한다, ③ 노농운동의 전력을 집중하기 위해 전국적 총단결의 촉성을 기한다 등이었다. 또 실천 행동으로 각 지방 소작상황의 조사와 소작단체 내용조사, 소작단체의 조직, 유사 소작단체, 소작조건, 농업개량 등을 결의하였다. 또한 각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 문제, 동척이민 문제, 동아일보 문제 등 사회적 현안에 관하여 토의하였다. 그리고 창립대회를 마친 후 전선노농운동자간담회를 열고 반동세력 및 노농운동 방해자에 대한 대책, 형평 문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문제, 동아일보 대구지국 윤홍열 제재 문제, 단체기의 제조, 관내 상황 보고, 대구 유기제조직공 파업 문제 등에 관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남선노농총동맹의 본부는 대구노동공제회에 설치할 것을 결정하고, 집행위원장에 서성희, 상무집행위원에 대구의 한규석, 정운해, 김정규, 김하정, 권태용, 최원택 등을 비롯한 다수의 인물을 선정하였다. 또 남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에서 전국적인 노농조직을 결성하기 위한 10인의 전조선노농단체연합회기관기성교섭위원회를 구성하였다.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 직후 참가자들은 양편 검은선에 중앙의 붉은색 바탕에다 흰색의 ‘노동’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노동기’를 앞세우고, 「노동가」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하였다.

[의의와 평가]

1924년 3월 대구에서 열린 남선노농총동맹은 계급적 노동·농민운동을 주도하고, 노농운동의 전국적 통일기관이자 지도기관으로서 조선노농총동맹의 창립 기반을 조성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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