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동[중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443
한자 桃園洞[中區]
영어공식명칭 Dowon-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도원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47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대구부 도원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경상북도 대구부 도원동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도원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상북도 대구시 도원동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도원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1년 -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도원동에서 대구직할시 중구 도원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대구직할시 중구 도원동에서 대구광역시 중구 도원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도원동(桃園洞)은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 수창권번과 자갈마당이 있다. 수창권번은 기생학교이면서 도원동의 자연 마을이다. 자갈마당은 ‘넓은 마당’으로도 불렸다. 과거 도원동 일대는 낮은 습지대의 황무지였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대구로 몰려들면서부터 사람들이 살게 되었고, 대구의 북쪽 관문으로 넓은 장터가 되었다. ‘넓은마당’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원동은 땔감이나 구들장을 팔기 위해 장이 자주 열렸다. 그런데 지대가 낮고 배수가 나빠 비만 오면 땅이 질펀하였다. 그래서 인근 공사장에서 자갈을 가져와 깔게 되니 자갈로 덮인 마당으로 변하여 ‘자갈마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후 1970 년대 말 도로를 정비하면서 자갈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한때는 집창촌이 들어서 ‘자갈마당’이라는 의미가 왜곡되기도 하였다.

[명칭 유래]

1914년 달성동 일부를 분할하여 팔중원정(八重垣町)이라 불렀고, 일제강점기 당시 공창(公娼)이 있었다 하여 1947년 일제 지명 청산 때, ‘도원동’으로 제정하였다. 도원동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비롯하였다.

[형성 및 변천]

도원동은 원래 대구부 서상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달성동 일부를 분할하여 팔중원정이라 하였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팔중원정을 도원동으로 변경하였다. 1949년 대구의 시 승격에 따라 경상북도 대구시 도원동, 1963년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도원동이 되었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1981년 대구직할시 중구 도원동, 1995년 대구광역시 중구 도원동이 되었다. 도원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성내3동이다.

[자연환경]

도원동 일대는 저지대로 달성토성 옆으로 흐르는 달서천달서천으로 합류하는 대구천의 범람으로 인하여 자주 침수되던 곳이다. ’자갈마당’이란 명칭에서도 저지대로 침수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도원동은 대구광역시 중구 태평로3가·수창동 등지와 경계를 이룬다. 북쪽으로 태평로, 서쪽으로 달성로가 통과한다. 한때 자갈마당이라는 칭호로 통용되던 전국적 집창촌이 있었으나, 도시재개발지구로 선정되어 대단위 아파트가 건립 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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