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368
한자 魯谷洞
영어공식명칭 Nogok-dong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전영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달성군 달서면 노곡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8년 - 경상북도 달성군 달서면 노곡동에서 경상북도 대구부 노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경상북도 대구부 노곡동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노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상북도 대구시 노곡동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서구 노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75년 - 경상북도 대구시 서구 노곡동에서 경상북도 대구시 북구 노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1년 - 경상북도 대구시 북구 노곡동에서 대구직할시 북구 노곡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대구직할시 북구 노곡동에서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노곡동(魯谷洞)은 대구광역시 북구 법정동 31개 중 하나이다.

자연 마을로는 까치원, 골안, 느리실[논실, 노곡], 뒷배탈, 부엉더미[부엉듬이, 부언듬, 부언덤], 샘골, 새미골, 방앗골, 청석골, 큰마을 등이 있다. 까치원은 노곡 본마을에서 강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지는 강변 마을이며, 마을 북쪽 산에 까치가 많은 것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하였다. 부엉더미는 노곡2동에서 팔달교 쪽으로 산등성이에 있는 마을로 부엉새가 많이 울었던 높은 절벽이 있는 곳이라 하여 유래된 마을 이름이다.

[명칭 유래]

마을의 모든 일은 공자의 가르침대로 따라야 한다면서 마을 이름을 ‘논어당(論語堂)’으로 부르다가 ‘논촌(論村)’으로 변경하였다. 훗날 공자가 노(魯)나라 사람이니 ‘공자의 마을’이란 뜻의 의미를 가지는 ‘노곡(魯谷)’으로 바꾸었다.

[형성 및 변천]

원래 대구부 서중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부암동을 합쳐 경상북도 달성군 달서면 노곡동으로 개설되었다. 1938년 경상북도 대구부 노곡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대구의 시 승격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노곡동이 되었다. 1963년 구제(區制) 실시로 경상북도 대구시 서구 노곡동이 되었다. 1975년 구 경계 조정에 따라 경상북도 대구시 북구 노곡동이 되었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1981년 대구직할시 북구 노곡동, 1995년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이 되었다. 노곡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관문동이다.

[자연환경]

구릉성 저산지 대부분은 중생대 백악기 신라층군의 신라역암이 주된 암석을 보인다. 구역 남동쪽은 중생대 백악기 신라통의 학봉빈암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호강 안에 형성되어 있는 하중도(河中島)는 금호강에서 운반 퇴적된 충적지로 사력 점토 및 이토가 분포한다.

[현황]

노곡동은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태전동·구암동·조야동·노원동3가, 서구 비산동 등지와 경계를 이룬다. 노곡동의 남쪽을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고 그 아래로 금호강이 흐른다. 함지산(咸池山)[284.4m] 정상을 기점으로 산줄기가 좌우로 뻗어내려 가운데 작은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다. 마을은 함지산 골짜기에 소규모 분포하며 지형적인 제약과 접근성의 한계로 발전이 더디다.

금호강 한가운데 형성되어 있는 사력 퇴적지인 하중도는 현재 야생화 단지 조성으로 대구 시민들이 많이 찾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하중도는 비닐하우스 농업 시설물이 많아 경관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좋지 않았으나 4대강 사업 추진으로 예산이 확보되어 경관과 환경을 크게 개선하였다. 원삼국시대 생활주거 유적과 분묘 유적이 섞여 나타난다. 삼국시대의 팔거산성[대구광역시 기념물]과 공룡 발자국 화석지가 분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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