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0032
한자 -, 金光石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주연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가수 김광석.

[김광석의 대구 시절 추억]

사람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남겨진 노래는 길을 만든다. 한 가수의 노래와 모습, 말들을 기리며 만들어진 길에는 해마다 150만 명이 찾는다.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가수 김광석(金光石)[1964~1996]을 그리워하는 곳이자, 김광석 팬들의 흔적을 그리는 장소이다.

1964년 1월 22일 대구시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내 번개전업사에서 출생한 김광석은 교사 출신 아버지의 5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김광석의 아버지 김수영은 전교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교원노조의 결성에 동참하고 간부 활동을 하다 해직되었다. 이후 집안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대구 중구 대봉동에서 허름한 전업사를 운영하며 광나·광동·광복·광득·광석 5남매를 키웠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아코디언 같은 악기를 잘 다룰 정도로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김광석의 아버지는 전기공사 등으로 생계를 이어 나갔고 어린 김광석은 아버지 일터에 놀러 가면서 대구에서의 짧은 유년기를 지낸다.

서울로 간 김광석은 경희중학교 시절 관현악부 활동과 대광고등학교 시절 합창부로 활동하면서 음악적 감수성을 키워 갔다. 대광고등학교 학생증에는 김광석의 본적이 경상북도 대구시 동구 범어동 268번지[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로 적혀 있다. 명지대학교 진학 후 민중가요를 부르고 선배들과 함께 소극장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1984년에는 서울 지역 대학생의 노래 연합 서클인 연합메아리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1984년에 가수 김민기의 『개똥이』 음반 제작에 참여하면서 데뷔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극단 학전의 대표 김민기는 훗날 ‘김광석 추모 사업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김광석은 그 후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등을 거쳤으나 1985년 대구에서의 군 생활 전후로 공백기를 가진다. 제대 후 본격적인 노래 인생을 걷기로 결심한 김광석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동물원’의 1집을 발매하며 1988년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아주 어린 시절에만 대구에서 지냈지만, 김광석은 고향이라는 그림자를 길게 끌고 다니며 가수가 된 이후에도 한번씩 지역을 방문하여 문화 공연을 가졌다. 1988년 10월 효성여자대학교[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가을 축제 때, 하얀색 프라이드를 직접 몰고 축제장으로 내려온 초대 가수 김광석은 원래 3곡만 부르기로 되어 있었는데, 객석의 반응 덕분에 40분 동안 열창하였다. 이듬해인 1989년 11월 김광석은 동아쇼핑 스타홀에서 대구의 대표적 공연 기획사인 ‘성우’의 기획으로 생애 첫 대구콘서트를 하기도 하였다. 당시 200석 규모의 공연장에 360명이 몰려드는 성황을 이루었다. 1995년의 크리스마스였던 12월 24일에서 25일 김광석은 대구 경북대학교의 강당에서 공연을 열었으며 역시 만원사례였다.

‘가객’,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서정적인 음악을 남긴 김광석은 텔레비전 방송보다는 거리의 소극장에서 팬들과 만나는 것을 더욱 중시하였다. 동물원 활동을 그만둔 후에는 통기타 가수로 1991년부터 꾸준히 소극장을 중심으로 공연한 김광석은 1995년 8월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1,000회 라이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를 기념한 전국 투어콘서트를 갖기도 한 김광석은 그러나 이듬해 1996년 1월 6일, 32세의 나이로 돌연 젊은 생을 마감함으로써 더욱 아쉬움을 남겼다.

[김광석의 길에서 부르는 노래]

인간 김광석은 사라졌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펼쳐 나가던 김광석의 음악이 여전히 남아 있고, 김광석을 추모하는 발길들이 끊이지 않으므로 김광석의 음악 활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1월 6일에는 12주기 추모 콘서트와 함께 대학로의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노래비 제막식이 열려 김광석에 대한 열기는 해가 가도 식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가수가 이미 타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TV 인기 프로그램 ‘히든 싱어’에 김광석 모창자들이 대거 등장하는가 하면 ‘김광석 다시 부르기’ 같은 공연은 해마다 이어지는 중이다.

2010년 11월, 김광석이 태어난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신천 둔치 담벼락에는 350m에 달하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조성되었다.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담고 있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는 100여 점의 다양한 벽화 작품이 해마다 새로 들어서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김광석을 몹시 ‘그리워하다[Miss]’, 그를 주제로 한 그림과 조형물을 ‘그리다[Draw]’의 두 뜻을 담고 있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흔히 ‘김광석길’로 불리며 전국의 많은 팬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청은 2013년부터 해마다 가을이면 ‘김광석 나의 노래 다시 부르기’ 경연 대회를 개최한다. 행정안전부와 대구광역시가 주최하여 2020년 10월 말에 개최한 대구실패박람회에서는 수많은 참가자들이 김광석의 「일어나」를 부르는 영상을 온라인 합창 형식으로 제출하여 여전히 김광석의 노래로 희망을 얻는 이들이 많음을 입증하였다.

실제로 김광석의 노래는 동시대를 살아 온 사람들의 곡일 뿐 아니라 당대의 곡으로 되살아나 누구나의 애창곡이 되고 있다. 김광석이 못다 부른 노래는 인생의 축소판이 되어 삶의 고비마다 마주치곤 한다.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 서른에 다다른 청년에서부터 60대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김광석의 노래로 위안을 삼는 이유이다. 김광석의 곡은 인생의 문턱에서 겪는 방황을 헤아려 주고 깊은 메아리로 응답함으로써 더 큰 울림을 낳는다는 평을 얻고 있다.

가령 분단된 우리 땅 젊은이들의 애환을 그려낸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에게, 군복무 중에 세상을 떠난 친형 김광동을 떠올리게 할 노래였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라는 가사는 김광석 특유의 담담함으로 입대하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담아 내고 있다. 특히 「이등병의 편지」는 2000년 돌연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때마침 인기를 끈 영화의 영향이 컸다.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중 “근데, 광석이는 왜 그리 일찍 죽었다니?”라는 대사로 김광석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현재까지도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군대에 가야 하는 청년들의 심정을 어루만지며 꾸준한 애정을 받고 있다.

이른 죽음으로 인하여 김광석이 영원히 서른 즈음에 머물러 있는 탓에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는 더욱 애틋한 가사로 남고 말았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2007년에는 「서른 즈음에」가 음악 평론가들 42명 사이에서 아름다운 노랫말 1위로 선정되었다. 또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을 적시는 노인 세대를 종종 발견할 수 있으며, 많은 가수들이 다시 부르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에는 ‘김광석’이라는 매력적인 콘텐츠와 새로운 형태의 예술 작품을 들여놓은 젊은 예술가들의 공을 빼 놓을 수 없다. 대구의 쇠락하여 가던 방천시장 옆 좁은 골목길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리라 짐작한 이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광석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선사하고, 뒤늦게 김광석을 알게 된 젊은 세대에게는 동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방천시장의 지난날]

대구광역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천은 주요 하천이자 대구 시민의 쉼터이다. 신천의 제방 아래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방천시장은 광복 직후에 형성되었다. 해방을 맞아 일본, 만주 등에서 귀국한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장사를 하면서 생겨난 전통시장인 방천시장은 한때 서문시장, 칠성시장과 어깨를 겨룰 정도였다고 전한다. 667㎡의 방천시장이 번성하던 시기에는 쌀가게를 중심으로 점포가 1,000개도 넘었지만, 2000년대에 와서 겨우 70여 곳만 문을 연 한적한 시장으로 전락하였다. 더군다나 점포들이 문을 닫는 저녁 시간이 되면 다니는 사람도 없어 으슥한 장소로 분류되던 슬럼가였다. 쇠락한 대봉동 방천시장과 신천 제방 콘크리트 벽 사이의 좁은 골목길은 우범지대라 할 만한 구역이었다.

방천시장 뒷골목을 위험하고 악취가 풍기는 장소에서, 다시 활기 넘치는 시장으로 되살리기 위하여 대구광역시 중구청은 몇 단계의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첫 번째는 2009년 2월부터 6월까지 진행된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였다. 방천시장의 빈 상가를 활용하여 지역 작가들에게 예술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시장 환경 개선을 시도한 예술 프로젝트였으며, 예술가와 상인 일촌 맺기 등 13개 사업이 기획되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사업에 선정됨으로써, 오늘날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태동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009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진행된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시장 상인, 예술가 상인이 중심이 되어 전통시장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고 문화예술 장터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한 사업이다.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이며,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의 줄임말이다.

대구광역시 중구청은 우선 방천시장과 관련된 인물을 선정하기로 하였는데 몇몇 후보군이 떠올랐다.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446길 일대의 방천시장과 관련된 인물로는 김광석 외에도 대우그룹을 창업한 고 김우중 회장과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 선수를 들 수 있다. 김우중 회장은 6·25전쟁 직후 열네 살 소년으로서 방천시장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네 식구를 부양하였고, 양준혁 선수의 아버지는 방천시장에서 가방을 팔았다고 알려져 있다. ‘김우중 길’, ‘양준혁 길’, ‘김광석 길’ 등을 놓고 고심하던 대구광역시 중구청김광석이 예술과 문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라는 취지에 가장 잘 맞는 테마라고 여겨, 사업비 6억 9000여 만 원을 들여 김광석길을 조성하였다. 이를 통하여 가판대 디자인 개선을 시작으로 시장 게이트 설치, 방천시장 상인회 주관의 상인 교육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사업’이 자연히 2012년부터 전개되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국내 최초로 대중음악인의 이름을 딴 창작의 거리이다. 대구광역시 중구는 문전성시 사업 종료 후에도 김광석길의 활성화를 위하여 벽화 작업, 공원 조성, 조형물 설치 등을 진행하였다. 또한 2013년에는 ‘김광석길 관광 활성화 사업’을 통하여 벽화 리뉴얼 사업, 골목 방송국 설치, 야외 공연장 조성, 화장실 신축 등으로 방문객 편의시설을 보완함으로써 주말이면 5,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2013년 행정안전부 주관 ‘향토자원 베스트30’에 올랐으며, 2014년 한국관광공사 주관 ‘베스트 그곳’에 선정되었다. 2015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거리마당 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2017년 ‘한국에서 꼭 가 봐야 할 대표 관광지 100곳’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후 방천시장김광석길을 기반으로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이 생겨나 비로소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경제성을 갖추게 되었다. ‘문화예술 장터’로 자력갱생하고 있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방천시장은 바야흐로 르네상스 시기를 맞고 있다.

[김광석길로 다시 태어난 방천시장]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1년 365일 가수 김광석의 노래가 흐르는 길을 종종 찾는다. 대구광역시 중구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150만 명이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걸었다. 무엇보다 도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으며 특히 대구도시철도가 닿고 신천대로까지 끼고 있다는 점이 발전 가능성을 더 열어 놓고 있다. 또한 새로운 생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신천을 바로 곁에 두고 있기에 도보 여행자들에게도 유용한 코스가 되고 있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경대병원역 3번 출구에서 수성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김광석길을 만날 수 있다. 또는 대구도시철도 3호선 대봉교역에서 수성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도 김광석길로 갈 수 있다. 골목 어귀에 다다르면 귓가에 김광석의 명곡들이 생생히 들려온다. 김광석길 입구의 골목방송스튜디오에서는 관광객들의 신청곡으로 노래를 틀어 주고 있어 김광석의 곡이 온 거리에 울려 퍼진다. 매주 토요일이면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며 길 중간에 있는 무대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를 주제로 버스킹 공연이 종종 벌어진다.

김광석길은 음악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 전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계속 진화 중이다. 골목 구석구석에 들어선 공방과 소소한 배움터, 창작교실 등이 몰리고 있다. 자그마한 사진전이나 미술전도 연중 열리고 있어 아트갤러리 골목을 찾듯 거닐어도 무방할 정도이다.

2017년 4월, 첫 운행을 시작한 ‘더플레이버스김광석’은 한국식 공연 버스이다. 버스 외부는 “안녕하실 테지요? 제가 김광석입니다”라는 인사말로 꾸며져 있고, 내부에 탑승하면 창밖을 바라보도록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탑승객들은 라디오 부스의 디제이와 함께 김광석의 삶과 음악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고, 김광석의 음악이 흐를 때마다 추억에 빠져든다. 한 시간가량 김광석의 목소리, 거리 공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즉석 힙합 버스킹, 관객과 소통하는 댄스 공연을 통하여, 김광석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의 예술가들과 컬래버하는 듯한 새로운 시도도 낳고 있다. 탑승 전 더플레이버스 홈페이지에서 사연과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출입구에 해당하는 중구 대봉동 40-53에는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가 있다. 그중에서도 1층 거실 존은 김광석이 머물렀던 거실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소파, 서랍장, 시계 등은 김광석이 실제로 사용하던 것이다.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하여 만든 작은 기념관에는 김광석이 평소 사용하였던 수첩과 다이어리, 손 글씨가 남아 있는 악보, 1995년 6월에 열린 1,000회 공연 기념 초대장과 리플릿, 하모니카 등 100여 점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현재 대구광역시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며,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제4코스 삼덕봉산문화길의 한 코스로 등재되어 있다. 이로 인하여 관광객들이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대구 도심 관광의 랜드마크로 사랑받는 중이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만들어진 계기는 ‘김광석’이라는 유명인 덕분이지만,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지속적으로 채워 나가고 있는 것은 대구의 문화 예술인들과 대구 시민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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