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7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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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相泰 |
영어음역 | Sin Sangtae |
이칭/별칭 | 혜산(兮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윤오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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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동 1160[현 복성리]![]() |
성별 | 남 |
생년 | 1889년 4월 1일![]() |
몰년 | 1950년 12월 8일![]() |
본관 | 평산 |
대표경력 | 대구은행원 |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9년 칠곡군 약목면에서 태어났다. 1909년 대동청년당(大同靑年黨) 창립에 참여하여 지하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1915년에는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중앙총부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김천지회(金泉支會)를 조직하였으며 잦은 구금과 고문의 여독으로 광복 후 1951년 11월 29일 사망하였다.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를 졸업한 후에 대구은행(大邱銀行)에 근무하면서, 천도교(天道敎) 대구교구의 간사로 활약했다. 1909년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비밀 청년조직인 대동청년당을 안희제(安熙濟)·남형우(南亨祐) 등과 창립하여 지하운동을 전개하였고, 1915년에는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에서 활동 중 체포되기도 했다. 1917년에는 대구은행에 근무하던 의열단(義烈團) 부단장 이종암(李鐘岩)의 활동을 도왔으며 1926년의 6·10만세운동 때는 허홍제(許弘濟)·조중규(曺重奎)·채충식(蔡忠植)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7년에 민족협동전선을 표방한 신간회가 창립되자 김천지회를 조직하고, 1930년 11월에는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