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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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山申氏 |
영어의미역 | Pyeongsan Si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북삼읍 숭오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세거지 |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3리|약목면 남계리|약목면 복성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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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중기/1522년 경![]() |
성씨시조 | 신숭겸(申崇謙) |
입향시조 | 신수하(申壽遐) |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수하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성씨.
시조(始祖) 신숭겸(申崇謙)은 전라도 곡성에서 나서 태봉(泰封)[후고구려]의 기장(騎將)으로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더불어 궁예(弓裔)를 폐하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개국원훈대장군(開國元勳大將軍)이 되었다. 하루는 왕건이 제장(諸將)들과 평주(平山)에 사냥을 나가 삼탄(三灘)을 지날 때 마침 고공(高空)에 뜬 세 마리의 기러기를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쏘아 맞힐 수 있겠는가?”하고 물으니, 신숭겸이 자신이 맞히겠다고 하였다. 왕건이 그에게 말과 활·화살을 주자, “몇 번째 기러기를 쏘리까?”라고 물었다. 왕건이 웃으면서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라”고 하였다. 신숭겸은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아 떨어뜨리니, 태조(太祖)가 탄복하고 기러기가 날던 땅 3백결(百結)을 하사(下賜)하고 본관(本貫)을 평산(平山)으로 삼게 하였다.
한성(漢城)에 세거한 20세손 신수하(申壽遐)는 중부(仲父) 신건(申健)이 1522년(중종 18) 인동부사로 부임할 때 수행하여 인동현의 영양김씨 김극성(金克誠)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 후 한성에 있는 친족이 황산찰방(黃山察訪)으로 임용하려 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인동 서쪽 강진리(江津里)에 정착하니 약목의 평산신씨 입향조가 되었다.
인구주택총조사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410여 가구 1,290여 명이 칠곡군 관내에 살고 있다. 지금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약목면 복성리, 남계리 등에 세거하고 있다. 현존하는 자손 중에 유명한 정치가와 학자 등이 배출되었다.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에 진정(眞靜) 신우덕(申祐德)의 추모지소인 거경재, 칠곡군 약목면에 신유 장군 유적지인 숭무사, 극재(克齋) 신익황(申益惶)의 신주를 모신 신익황 사당, 신우덕의 사당인 추원당, 신익황과 신우덕을 모신 곤산서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