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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손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346
한자 密陽孫氏
영어의미역 Miryang Sonsi|Miryang So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부산광역시
집필자 김연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시조 손순(孫順)
입향시조 손석산(孫碩山)
입향 시기/일시 1480년 무렵연표보기 - 화지산 아래로 입향
본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입향지 초읍동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세거|집성지 초읍동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세거|집성지 반룡리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반룡리
세거|집성지 녹산동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세거|집성지 만덕동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정의]

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석산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개설]

손씨(孫氏)의 본관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148본으로 전해지지만 경주·밀양·비안·월성·청주·평해·일직 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알 수 없다. 위의 손씨 중 일직을 제외한 각 손씨는 모두 신라가 국가로 성립되기 이전의 원시 부족 사회인 사로(斯盧) 6촌 중 무산(茂山) 대수촌장(大樹村長) 구레마(俱禮馬)를 원조로,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고 있다. 손순의 손자 손익감(孫翼減)·손익담(孫翼淡)·손익원(孫翼洹) 3형제가 밀양·평해·경주로 각각 분관되고, 이 3본이 다시 비안·월성·청주로 분적했다.

[연원]

밀양 손씨의 시조 손순은 무산 대수촌(大樹村) 촌장 구례마의 후손이다. 신라 흥덕왕 때 효자로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으며, 손순의 손자 손익감이 신라조에 공이 있어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졌다. 손익감의 현손 손긍훈(孫兢訓)이 고려 태조 때 신기한 군공이 있어 광리군(廣理君)에 봉해졌다. 응천(凝川)과 광리(廣理)는 밀양의 옛 명칭이었으므로 본관을 밀양으로 삼게 되었다.

고려 말기 손책(孫策)이 조선 개국에 불복하여 처형당하자 손책의 부인 이씨는 삼형제를 데리고 호남으로 내려왔다. 첫째 손검경(孫儉敬)은 나주에, 둘째 손유경(孫有敬)은 보성에, 셋째 손계경(孫季敬)은 정읍에 각각 정착하여 각 파조가 되었다.

[입향 경위]

부산 지역에 밀양 손씨가 들어온 것은 매우 오래 되었다. 밀양 손씨 족보에 의하면 밀성군의 후손으로 손광(孫洸), 손하(孫賀), 손복경(孫卜經), 손유호(孫攸好), 손목종(孫睦宗), 손덕번(孫德蕃)까지는 밀양에서 세거하였다. 그러다가 손덕번의 아들 손석산(孫碩山)이 1480년(성종 11) 무렵 동래로 들어와 화지산(和池山) 아래 지금의 초읍동에서 살았다. 그 이후로 손석산의 아들 손수경(孫守敬), 손걸(孫傑), 손백연(孫百連), 손영수(孫英秀), 손이룡(孫以龍), 손인례(孫仁禮), 손만귀(孫萬貴), 손순도(孫順度)[일명 손순우(孫順遇)]로 이어진다.

[현황]

1934년 조선 총독부에 발행된 『朝鮮の姓』의 동래군조에는 서면 초읍리에 35호가 거주한다고 하였으며,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밀양 손씨가 세거(世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2000년 인구 조사에서 밀양 손씨는 9,418가구에 3만 876명[남자 1만 5537명, 여자 1만 5339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양 손씨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북구 만덕동, 강서구 녹산동, 장안읍 반룡리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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