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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여동 삼어 마을 남평 문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67
한자 盤如洞三魚-南平文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Nampyeong Mun clan in Banyeo-dong Sameo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삼어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세거지 반여동 삼어 마을 남평 문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 삼어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남평 문씨 세거지.

[개설]

남평 문씨(南平文氏) 시조는 삼한 벽상 공신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은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무성(武成)의 시호를 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남평으로 한다. 남평 문씨 분파는 충혜공파(忠惠公派), 헌납공파, 순질공파, 의안공파(毅安公派), 시중공파, 성숙공파, 남제공파, 순평부원군파(順平府院君派),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등이다.

동래 입향조는 14세 문평(文苹)이다. 1406년(태종 6) 종숙(從叔)인 가학(可學)[13세]의 모반 사건으로 가화(家禍)를 당하여 선대의 세거지인 경상남도 단성을 떠나 사천에 머물다가 1440년(세종 22) 둘째 아들 문우원(文遇元)을 데리고 동래 초읍동으로 들어왔다. 큰아들 문어동(文圉仝)은 그대로 사천에서 세거하였다.

[명칭 유래]

반여동은 지형이 소반(小盤)[작은 밥상]처럼 동그랗다는 풍수설의 영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650년경 의안공파 문상질(文尙質)[21세]이 현재의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반여동 삼어 마을로 이거하여 남평 문씨 의안공파 거벌문회의 입향조가 되었다.

[자연 환경]

반여동 삼어 마을해운대구 서부에 위치하여 서쪽은 수영강과 접하고, 동쪽은 장산(萇山)[634m]에서 북쪽의 위봉[274m]으로 이어지는 산지가 발달하였다. 이곳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서쪽으로 흘러 수영강으로 유입되며,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석대천으로 유입된다. 석대천 하류와 수영강 유역에 평지가 발달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현황]

반여동 삼어 마을 일대에서 남평 문씨 25여 가구가 살았으나 2013년 현재는 삼어 마을을 비롯해 동래 지역에서 10여 가구만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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