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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3475
한자 馬飛峴
영어의미역 Mabihyeon Hill
이칭/별칭 모너머 고개,마비치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개
관련문헌 『이 충무공 전서(李忠武公全書)』|『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 「동래 부산포 지도(東萊富山浦地圖)」|「1872 군현 지도 부산진 지도(1872郡縣地圖釜山鎭地圖)」|「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1872郡縣地圖東萊府地圖)」
폐지 시기/일시 1910년 - 착평 공사로 고개가 사라짐
비정 지역 마비현 비정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전포동을 오가던 옛 고개.

[개설]

마비현(馬飛峴)은 오늘날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송상현 순절비 인근으로 비정된다. 조선 초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1471]에서 확인되듯이, 마비현은 부산의 옛 고개 중 존재가 가장 먼저 확인되는 고개이다. 조선 시대 동래부와 부산진(釜山鎭)을 오가는 경로상의 주요 고개로 행정·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동래장·부산진장을 왕래하던 상인들도 넘나들던 곳이다.

[명칭 유래]

마비현은 『해동제국기』에 실린 「동래 부산포 지도(東萊富山浦地圖)」에 ‘마비을이현(馬飛乙以峴)’으로 처음 기록상에 나타난다. 마비을이현은 당시 ‘말 나는 고개’로 불리던 것을 우리말 표기가 널리 퍼지지 않은 때 이두식(吏讀式)으로 한자의 음과 새김을 따서 ‘말[馬] 날[飛] 을(乙) 이(以) 고개[峴]’로 표기한 것이다. 「1872 군현 지도 부산진 지도」와 「동래부 지도(東萊府地圖)」[1899]에서 이 고개를 ‘마비현’이라 표기하였다.

마비현의 명칭은 말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명칭 유래는 먼저 석포 목장[현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지역에 위치]에서 방목하던 말이 황령산에서 풀을 뜯다가 능선으로는 비교적 낮은 ‘마비을이현’으로 달아나는 경우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다른 유래로는 숲이 울창하여 맹수나 도둑 떼가 많아 날이 저문 뒤에는 무서워 고개를 넘을 때는 말을 타고 경주하듯이 달려야 하였기 때문에 ‘마비현’ 또는 ‘마비치(馬飛峙)’로 불렀다고 한다.

마비현을 방언으로 ‘모너머 고개’라 부른다고도 전하는데, 이는 넘기 힘든, 즉 ‘못 넘는’ 고개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1876년 부산이 개항된 이후 부산항에서 일본인의 거류지에서 통행할 수 있는 거리를 약 4㎞[10리]로 한정하여 이 고개는 넘지 못한다 하여 ‘못 넘어가는 고개’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마비현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송상현 순절비 인근으로 서쪽의 백양산과 동쪽의 금련산 사이의 고개이다. 조선 시대 동래부와 부산진을 오가는 경로상의 주요 고개로 행정·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동래장·부산진장을 왕래하던 상인들도 넘나들던 곳으로 오래된 고개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부산의 옛 고개 중 존재가 가장 먼저 확인되는데, 조선 초 『해동제국기』에서 마비을이현으로 확인되며, 「1872 군현 지도 부산진 지도」 등에서는 마비현으로 확인되어 명칭 변화를 알 수 있다.

마비현황령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산등성이와 금정산맥의 지맥인 화지산의 남쪽 산등성이 기슭에 있는 안부(鞍部)로 본래 해발 고도 50m 정도이며, 고개가 아주 가파르고 주위는 숲이 우거졌다고 한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도로 개설과 1915년 부산과 동래 사이 경편 철도(輕便鐵道) 부설로 착평(鑿平) 공사가 이루어지며 고개는 현재와 같이 낮은 평지가 되었다. 서면에서 동래온천장으로 오가는 전차길이 있었을 때[1915~1968]에는 이 고개에 ‘신좌수영역’[송공 삼거리 송상현 순절비에서 거제리 방향 약 10m 아래]이 위치하였다고 한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위치한 송상현 순절비 부근으로 비정된다. 2012년 현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송공 삼거리를 중심으로 중앙 공원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 일대가 마비현이었던 만큼 고갯길의 역사성이 반영되어 진행되길 바란다.

[관련 기록]

『이 충무공 전서(李忠武公全書)』[1795] 권2, 장계(狀啓)1 옥포파왜병장(玉浦破倭兵狀)에 “소인으로 하여금 군장을 짊어지고 가게 하였고, 이들을 거느리고 나아가 함께 진압하고자 하였다. 마비을이현에 이르자 왜군이 이미 부산을 함락하였다고 들었다[使小人軍裝負持 率赴同鎭 至馬飛乙耳峴 聞倭已陷釜山]”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외에 『해동제국기』에 실린 「동래 부산포 지도」에 마비지이현, 「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와 「1872 군현 지도 부산진 지도」에 마비현이 각각 표기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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