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2964 |
---|---|
한자 | 甘田洞·周禮洞咸安趙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Haman Jo clan in Gamjeon-dong, Juryeo-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주례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라 |
[정의]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과 주례동에 있는 함안 조씨 세거지.
[형성 및 변천]
함안 조씨(咸安趙氏) 가승(家乘)에 의하면 조선조 단묘(端廟)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던 어계 은자(漁溪隱者) 조여(趙旅)의 현손인 조근(趙墐)이 1500년대 중반 밀양 삼랑촌을 거쳐 임진왜란 전 양주 고을 사천 땅에 이거하였으며, 조근의 큰아들 조원도(趙元道)는 백부에게 출계(出係)하고, 둘째 아들 조국도(趙國道)는 괘내리[甘洞]에, 셋째 아들 조진도(趙璡道)는 주례리에 각각 터전을 잡아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사상구 일원은 물론 양산, 기장, 수영, 동래, 사하, 진해 웅천 등지로 이거하여 세거지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조국도[임진왜란 참전 당시 44세]와 조진도, 그리고 조국도의 아들 조영신(趙英信), 조영련(趙英連), 조영천(趙英千) 모두 임진왜란에 참전하였으며, 이 가운데 조국도, 조영신, 조영련 세 부자가 순절하였다. 그 중 조영련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묘를 괘법동[감동(甘洞)] 후산 고석등(古石嶝)에 초혼장으로 장례하였다고 한다.
입향조 조근의 두 아들 조원도, 조국도와 두 손자 조영신, 조영련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고, 셋째 아들 조진도와 손자 조영천은 사천[사상] 구인의사(九人義士) 중 2인이다. 후손 중에는 동래성 축조 시에 감관으로 3명이 래주축성비에 이름이 올라 있고, 동래부청 선생안에 18명, 동래독진의 무관간부 명부에 약 50여 명, 사상향안에 약 80여 명이 등재되어 있으며, 중앙 무관직으로 절충장군, 어모장군 등 10여 명이 배출된 전형적인 무관 집안으로 명성을 날렸다. 일제 강점기에는 4명이 독립운동에 가담한 기록이 있으며, 그 중 기독교 영수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옥중에서 순절한 회성 조용학(趙鏞學)이 있다.
[현황]
함안 조씨는 주례동 세거지에서 현재 15대를 이어가며, 후손들은 김해와 기장, 양산, 밀양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최근 사상 지역의 도시 개발로 인해 조상의 분묘가 훼손되어 주례동에 있던 재실을 사상구 백양대로 547번길 74-4로 옮겨 사천재(沙川齋)를 건립하였다. 이곳 재실에는 입향조 이하 여러 조상을 한 곳에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합사로 향제를 지내고 있다. 또 재실에는 집안의 내력을 보여 주는 교지, 공신녹권과 집안의 계 모임 기록, 조선 시대 사상 지역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사상면 호적 중초(戶籍中草)」, 「사상면 감동리 남정책」 등이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