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18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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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映湖 |
영어음역 | Paik Yongho |
이칭/별칭 | 남포(藍浦),백영효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우석 |
[정의]
현대 부산 출신의 대중음악 작곡가.
[활동 사항]
백영호(白映湖)의 본관은 남포(藍浦)이고, 본명은 백영효이다. 1920년 8월 8일 부산에서 출생하였으며, 만주 신징음악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47년 코로나레코드에 입사하였다. 1953년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 소재의 미도파레코드에서 문화 부장 및 전속 작곡가로 활약하면서 백설희·방운아·정향·신해성 등 미도파레코드 전속 가수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후 1964년에는 지구레코드 전속 작곡가, 1978년 한·일 예능 복지 전속 작곡가로 활동하였다. 1984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1987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평의원회 부회장, 한국연예협회 창작분과 지도 위원을 지냈다. 1990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평의원회 의장과 1991년 가요작가협회 이사를 지냈고, 1993년 제1회 ‘배호 가요제’ 추진 위원을 맡았다. 1995년 서울 중구문화원 이사, 1993~2003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평의원회 고문을 역임하였다. 2003년 5월 21일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백영호는 100여 곡의 히트곡과 3,200여 곡의 작품을 발표하여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부산 출신의 대중음악 작곡가이다. 미발표곡을 포함하면 4,000여 곡의 작곡과 5,000여 곡의 작사에 이른다고 한다. 대표적인 곡으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1964)·「여자의 일생」·「울어라 열풍아」·「지평선은 말이 없다」·「빙점」·「강명화」·「아씨」·「여로」·「임금님의 첫사랑」·「잊을 수 없는 연인」·「저 강은 알고 있다」·「첫눈 내린 거리」·「춘천댁 사공」·「평양 기생」·「홍콩의 왼손잡이」 등이 있다.
이 외에 강영철의 「불사조」, 남상규의 「고향의 강」·「추풍령」, 남인수의 「운명의 캬라반」·「추억의 소야곡」(1955),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방운아[방태원]의 「마음의 자유 천지」·「오백년 고려성」, 배호의 「비 내리는 명동 거리」, 손인호의 「해운대 에레지」, 정향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등이 있다.
[묘소]
경상남도 사천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9년 TBC 방송 가요 대상 작곡상, 1971년 『조선 일보』 청룡상 작곡상, 1994년 서울 정도 600년 자랑스런 서울 시민상, 1999년 옥관 문화 훈장을 수상하였다. 이 외에도 문화공보부 무궁화상 작곡상, 중앙일보사 방송 가요 대상 작곡상, 일본 빅터사 인기 작곡가상,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 작곡상 등을 수상하였다. 1997년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 1동 297-22번지 서울내과의원 내 전시장에 백영효 기념관이 개관되었고, 2009년 7월 9일 『백영호 작곡집』이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