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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중부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968
한자 釜山中部敎會
영어공식명칭 Busan Chungbu Presbyterian Church
이칭/별칭 중부교회,부산민주화 성지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책방골목길 13-6[보수동 1가 116-11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회
설립자 구위경 장로 외 240여 명
전화 051-256-9163
홈페이지 부산중부교회(http://www.chungbu.or.kr/)
설립 시기/일시 1957년 3월 10일연표보기 -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59년 -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 인근에서 보수동 1가 116-116으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2012년 4월 10일연표보기 - 중부교회에서 부산중부교회로 개칭
최초 설립지 중부교회 - 부산광역시 중구
주소 변경 이력 중부교회 - 부산광역시 중구 책방골목길 13-6[보수동 1가 116-116]
현 소재지 부산중부교회 - 부산광역시 중구 책방골목길 13-6[보수동 1가 116-116]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

[설립 목적]

부산중부교회는 예배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며, 배움으로 진리를 익히며, 사귐으로 서로 사랑하고 친교하며, 선교로 세상에 나아가 봉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6·25 전쟁 후 함경북도 성진에서 피난 내려 온 240여 명의 성도들이 1957년 3월 10일 용두산 인근에 중부교회를 설립하였다. 6·25 전쟁 후 곤고함에 지친 피난민들을 향해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성경 말씀[이사야 40:1]에 기초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교회 설립 당시의 주된 사명이었다. 1959년 성도들의 헌금과 캐나다 연합교회의 지원으로 지금의 자리에 교회 건물을 건축했으며, 1972년 3월 교회 부속 건물 공사를 시작하고 7월에 목사관, 교육관, 책방 건물 시설을 갖춘 313㎡의 부속 건물을 완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12년 4월 10일 한국기독교장로회 부산노회의 승인으로 부산중부교회로 개칭하였다.

역대 담임 교역자로는 이춘식, 심응섭, 최성묵, 김용환, 김일석, 김광호 목사[현]가 있었고 역대 장로는 이창건, 이자천, 이종순, 박순금, 구창수, 조창연, 조문길, 조성항, 김원석, 김경렬, 장부근, 최영모, 김철곤, 이영우, 이장진, 김성철, 조성삼, 이숙재, 이태성이 있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70~80년대 부산중부교회의 주요 사역은 ‘민주화’ 관련 활동이었다. 암울한 역사의 중심에서 시대의 아픔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해방 공간인 동시에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며, 이 땅의 민주화에 초석을 닦았다. 1974년 4월 9일 조성삼, 황대봉 교우가 긴급 조치 1호, 4호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1976년 11월에는 김영일, 조태원, 이태성 교우가 긴급 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계속되는 민주화 운동 과정 속에서 교인들이 연이어 불이익을 당하거나 연행되었다. 김대중 면회 사건으로 청년회 소속이었던 부산대학교 학생 김언곤과 박성언이 퇴학을 당했고, 1978년 4월 25일 4·19 부산대 선언문 배포 사건으로 교회 청년인 정외영, 이성동, 전중근, 서연자가 구속되었으며, 10월 19일에는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박상도 교우가 법정 구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1979년 3월에는 국민연합 3·1절 선언문 배포 사건으로 노경규, 조태원 교우가 긴급 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부산중부교회의 민주화에 대한 열기는 부마 민주 항쟁의 불씨가 되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민주화를 염원하는 유인물이 부산중부교회를 통해 부산에 배포되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중심으로 서울에 명동성당이 있었다면 부산에는 부산중부교회가 있었다.

1984년 교회의 대외 선교 사업으로 한울장애인자활센터를 개소하여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해오고 있다. 이를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아직 성숙되지 못했던 시기에 부산시의 조례 제정과 사회적 인식을 깨우는데 일조했다. 십 년여에 걸친 장기 교육 과정이 사회적 여건 변화로 현재는 단기 과정으로 전환되었지만 여전히 자활 센터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1990년부터 장애인 유치원을 개원하여 유아 교육에서 소외 받고 차별 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귀한 교육의 장을 열어오는 귀감을 보였고, 2000년부터 각 지자체와 사회단체들이 이 일들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교육에 대한 이 같은 교회의 관심은 지역 사회의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는 데까지 이어져 있다.

[현황]

교회 조직으로 당회와 제직회 아래 남신도회, 여신도회, 성가대, 청년회 등이 편성되어 있으며 교회 학교가 어린이부와 중고등부로 나뉘어져 있다. 2012년 현재 교역자는 목사 1명, 전임 전도사 1명이고 교인은 장로 4명, 출석 장년 60명이다.

[의의와 평가]

부산중부교회는 부산의 민주화와 노동 운동에 있어 전위대적인 역할을 감당해왔다. 국제사면위원회 부산지부[당시 위원장 김광일, 1976. 11] 설립과 부산도시산업선교회[당시 위원장 최성묵 목사, 총무 박상도, 1977. 4] 창립의 중심에 부산중부교회가 있었고 부마 민중 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감당했다. 여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최성묵 목사였다. 부산중부교회의 사회적 역할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지역 교회의 예배 드림을 바탕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 고백이 사회적으로 펼쳐나가도록 노력하고 있고 특히 한울장애인재활센터를 통한 사회적 선교로서 나눔과 섬김을 이루어 가고 있다.

[참고문헌]
  • 부산중부교회(http://www.chungbu.or.kr)
  • 인터뷰(부산중부교회, 2012.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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