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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9208
한자 溫泉-
영어의미역 Oncheon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온천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동래군 남면 중동이 됨
변천 시기/일시 1942년 - 동래군 남면 중동에서 부산부 수영출장소 중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3년 - 부산부 수영출장소 중동에서 부산시 해운대출장소 중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시 해운대출장소 중동에서 부산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중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부산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중동에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중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0년 - 부산직할시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중동에서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중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해운대구 중동에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으로 개편
자연 마을 온천 마을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온천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해운대 구남벌에서 온천이 솟아나며 형성된 마을이라서 온천(溫泉) 마을로 불렀다. 해운대 온천은 본래 구남벌에서 솟았다 하여 구남 온천(龜南溫泉)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의 진성 여왕(眞聖女王)[재위 887~897]이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았는데, 해운대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 나았다는 전설이 있어 오랜 역사를 추정하게 한다. 마을은 1876년(고종 13) 부산항이 개항하고 일본인이 들어와 해운대 온천을 개발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전한다. 1887년(고종 24) 일본인 의사 화전야무(和田野茂)가 온천원을 발견하고 욕장을 건축하였다. 1905년(고종 42)에는 암영미길(岩永米吉), 의전선육(依田善六) 등 자본가들이 온천 여관을 건립하였으며, 1917년 해운루 여관[객실 20실의 2층 건물로 대욕장을 갖춘 근대식 여관]이 세워졌다. 『해운대 온천 실태 조사서』[1927]에는 한국인 219호에 1,190명, 일본인 65호에 166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을은 조선 후기 동래군 동하면(東下面) 지역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남면 중동리 온천 마을이 되었다. 1934년 해운대까지 철도가 개통되며 부산 도심과의 접근성이 향상되었고, 1935년에는 서양식 근대 호텔인 온천 호텔이 세워졌으며, 지금의 해운대구청 자리에 온천 풀장이 세워졌다. 1937년에는 해운대 공중 욕탕이 개장하는 등 온천 마을해운대 중심지로, 또한 해수욕장과 함께 부산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다.

1942년 수영출장소에 편입되었으며, 1953년 해운대출장소 중동에 속하였고, 1957년 동래구 해운대출장소 중동 온천 마을이 되었다. 1963년 해운대 온천 마을 일대에 관광호텔을 비롯한 숙박업소가 건립되며 강가가 늘어나 현재와 같은 관광지로 변하게 된다. 1980년 해운대출장소가 해운대구로 승격하였고,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며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온천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온천 마을은 동쪽으로 달맞이 고개를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하여 전체적으로 북서쪽으로 열린 지형이다. 달맞이 고개미포에서 청사포로 넘어가는 와우산 중턱에 있는 고개로 주변의 바다 풍광이 매우 뛰어나다. 달맞이 고개 쪽 해안은 암석 해안이다. 서쪽 해안에 해운대 해수욕장이 있다.

[현황]

온천 마을중 1동에 있는 자연 마을이다. 마을 내에 해운대 시장이 있으며 시장에서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이르는 길가를 따라 상가와 포장마차가 들어서 있다. 관내에는 해운대구청이 있고, ‘해운대 석각비’와 ‘해운대 온천 상징비’가 자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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