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77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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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明進夜學校 |
영어의미역 | Myeongjin Night School |
분야 | 문화·교육/교육,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형목 |
[정의]
개항기 부산 영주 지역 유지들이 설립한 야학.
[설립 목적]
을사늑약 이후 국망(國亡)에 대한 위기의식은 근대 교육을 확산·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였다. 야학 운동이나 사립 학교 설립 운동이 교육 구국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사립 학교 설립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야학이 이를 대체하여 나갔다. 명진야학교(明進夜學校)도 국권 회복을 위한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근로 청소년에게 시세 변화를 일깨우는 등 현실 인식 심화는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이바지하였다. 특히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하여 1.4배에 달할 정도로 야학에 의한 여성 교육 시행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변천]
명진야학교는 1909년 2월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영주동 유지 신사(有志紳士) 고윤하(高允河)·조진우(趙鎭宇)·곽중환(郭重煥)·박승옥(朴勝玉)·박동식(朴東植) 등이었다. 개교 이래 재적생은 남자 56명과 여자 82명 등 138명이었다. 교장은 박승옥, 교사는 한진표(韓鎭杓)였으며 1910년 이장춘(李長春) 등이 충원되었다. 부산항 경부 정석내(鄭錫迺)와 임지춘(林枝春) 등의 의연금 기부는 운영비 확충에 기여하였다. 폐교 시기는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초등 교육 과정을 단기 속성 과정으로 가르치는 교육 활동에 중점을 두었다. 신문이나 잡지 등을 교재로 삼아 변화하는 현실 인식을 심화시켰다. 학예회·발표회나 운동회 개최 등을 통하여 심신 단련에도 노력하였다. 한글·역사·지리·한자와 간단한 산술 등이 주요 교과목이었다. 학교장 박승옥은 일본유학생단지동맹에 의연금 모집 활동과 동래 수면 양정의숙 발기인 등으로 참여하는 근대 교육 보급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의의와 평가]
근대 여성 교육은 강고한 인습으로 상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야학에 의한 여성 교육은 거의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명진야학교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부산 지역 여성 교육을 선도한 중심 기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