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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402
한자 萬德寺址
영어의미역 Site of Mandeok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북구 구만덕로 63-13[만덕동 30]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최정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0년 10월 8일~12월 1일연표보기 - 부산직할시립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함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9월 20일~12월 30일연표보기 -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함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9월 23일~2002년 1월 31일연표보기 -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함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6월 26일연표보기 - 만덕사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만덕사지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 30
출토 유물 소장처 부산광역시립박물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복천박물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로 63지도보기
성격 절터
지정 면적 보호구역 12,728㎡
관리자 부산광역시 북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있는 고려 시대 때 건립된 만덕사의 절터.

[개설]

만덕사『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고려 공민왕(恭愍王)충혜왕(忠惠王)의 서자 석기(石器)가 소군(小君)으로 머물러 있던 사찰로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기비사(祇毗寺) 명 명문 기와가 다량 출토되어 사명(寺名)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실정이다. 기비사에 대한 기록은 현재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보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정18년 금산사명 향완(大定十八年金山寺名香琓)’의 명문에서 찾을 수 있다. 명문에는 “대정 18년(1178)에 기비사 주지 삼중 대사 혜거가 동량(棟樑)이 되어 금산사 미륵대전에 향완 1구를 만들었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또한 현재의 만덕 고개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기비현(其比峴)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기비사의 영향으로 기비현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위치]

만덕사지금정산 줄기인 638.2m의 상학산(上鶴山) 기슭에 위치하며, 현재 만덕사가 들어서 있다. 만덕사 터 금당지로부터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인 만덕사지 당간 지주가 있으며, 만덕사지와 당간 지주 사이에는 제1 만덕 터널제2 만덕 터널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만덕사지의 정확한 규모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총 세 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1차는 부산직할시립박물관이 1990년 10월 8일부터 12월 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2차는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1996년 9월 20일부터 12월 30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3차는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2001년 9월 23일부터 2002년 1월 3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금당지, 성격 불명의 석렬 및 회랑지, 금당지 서쪽 축대 및 배수구, 건물지, 계단지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다량의 기와류와 자기류가 검출되어 만덕사지의 성격과 규모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기와류는 암막새·수막새·치미·명문 기와·잡상(雜像)·연목와(椽木瓦)·귀면와 등이 검출되었다. 도자기류는 해무리 굽 완 등의 청자류, 인화·인화 귀얄·귀얄 기법의 분청사기·소문(素文) 백자 등이 출토되었다. 고려 초기로 볼 수 있는 유물은 단판 8엽 연화문 수막새 및 해무리 굽 청자 등이며, 만덕사지 삼층 석탑과 만덕사지 당간 지주도 고려 초기 양식으로 이를 뒷받침해 준다.

금당지에는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인 전(塼)을 깔았고, 고려 시대에 유행한 다양한 종류의 연화문 수막새·일휘문 수막새·당초문 암막새·어골문 평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황룡사에서 출토된 치미와 비슷한 규모의 치미가 출토되어 당시의 만덕사가 현재의 범어사를 능가하는 화려하고 큰 규모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 전기 분청사기와 기와류가 일부 검출되었으나, 그 이후의 유물은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재 만덕사지에는 금당지 오른쪽에 가건물로 지은 만덕사가 들어서 있다. 금당지와 계단지, 회랑지가 일부 노출되어 있으며, 출토된 기와류의 일부가 현장에 쌓여 있다. 한편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만덕사『고려사』에 언급되어 있는 사찰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고려 초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부산에 존속하였던 대사찰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발굴 조사가 이루지지 않은 지역에서 기와류 및 자기류가 검출되고 있어, 만덕사지 전역에 대한 학술적인 발굴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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