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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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相沃 |
영어음역 | Gim Sangok |
이칭/별칭 | 초정(草丁),초정(草汀),백자실주인(白磁室主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임종찬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시조 시인.
[가계]
호는 초정(草丁). 아버지는 김덕홍(金德洪)이고, 어머니는 진수아(陣壽牙)이며 형제는 누이만 6명이다.
[활동 사항]
김상옥(金相沃)[1920~2004]은 1920년 5월 3일[음력 3월 15일] 경상남도 통영시 항남동 64번지에서 태어났다. 1926년 서당 송호재(松湖齋)에서 공부하였는데, 학생 중 가장 어렸지만 공부를 잘하여 시험 때마다 ‘괴(魁)’[으뜸의 성적]를 받았다. 1927년 통영공립보통학교[현 통영초등학교]에 입학하여서는 그림과 동시(童詩)에 소질을 보였다. 음악가 윤이상(尹伊桑)이 같은 학교 1년 선배, 시인 김춘수(金春洙)는 2년 후배다. 1933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통영의 남강인쇄소에 인쇄공으로 취직하였다. 1938년 『맥(貘)』 동인으로 시 「모래알」 등을 발표하였다. 1939년 『문장』에 시조 「봉선화」가 추천되었고, 1941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낙엽」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에 나섰다. 1947년 첫 시조집 『초적』을 발간하였다. 1954년 통영문인협회[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통영지부]를 재건하고, 동인지 『참새』를 타블로이드판으로 복간하였다.
1936년 송맹수(宋孟秀), 김기섭(金杞燮), 장응두(張應斗), 윤이상 등과 함께 일경에 체포되는 등 반일 사상을 갖고 있다는 혐의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삼천포, 통영, 마산에서 교편을 잡았고, 1959년 부산으로 옮겨 경남여자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1962년 4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산지부[1963년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로 개칭]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경상남도와 부산에서 활동하다가 1962년 서울로 이주하였다. 시서화(詩書畵)와 자기(磁器)에도 조예가 깊어 서울 인사동에서 골동품 상점 아자방(亞字房)을 운영하면서 『동아 일보』, 『중앙 일보』 등의 신춘문예 심사 위원을 지내기도 하였다. 2004년 10월 31일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김상옥의 시는 섬세한 언어로 전통적 정서를 감각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사물의 내적 생명감까지 유출해 내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첫 시조집 『초적』[1947]은 인쇄공 출신의 김상옥이 스스로 식자(植字)하여 만든 책이다. 『삼행시 육십오 편』[1973]도 직접 편집, 장정[붓글씨로 제자(題字)를 쓰고, 그 속에 그림을 그려서 붙이고, 직접 새긴 도장에 붉은 인주를 찍어서 장식함]까지 한 대형 시조집이다.
김상옥은 3행으로 된 단장 시조를 3행 3연으로 바꾸는 등 틀에 박힌 시조의 형식과 내용을 현대인의 감각에 맞게 변형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시조 형식을 파괴하여 줄글로 풀어서 시처럼 쓴 작품도 있다. 주요 작품집으로는 『고원의 곡(故園의 曲)』[1949], 『이단의 시(異端의 詩)』[1949], 『의상(衣裳)』[1953], 『목석(木石)의 노래』[1956], 『느티나무의 말』[1998] 등의 시집이 있고, 동시집 『석류꽃』[1952], 『꽃 속에 묻힌 집』[1958]이 있다. 시조 선집 『묵(墨)을 갈다가』[1980], 산문집 『시와 도예』도 펴냈다.
[묘소]
김상옥의 묘는 판교 공원묘지[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386]에 있다.
[상훈과 추모]
2005년 ‘초정김상옥기념회’가 발족하였다. 그해 10월 1일 ‘초정김상옥시인기념회’에서 『김상옥 시 전집』을 발간하였다. 제1회 노산 문학상[1976], 제1회 중앙 시조 대상[1982], 제2회 충무시 문화상[1994], 제9회 삼양 문화상[1997], 가람 시조 문학상[2001]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