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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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鍾植 |
영어음역 | Gim Jongsik |
이칭/별칭 | 남장(南藏)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장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영준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근현대 미술가.
[개설]
본관은 경주. 호는 남장(南藏). 김종식(金鍾植)[1918~1988]은 1918년 12월 13일 부산 동래구 장전동[현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김하준(金河駿)과 어머니 정연군(鄭然君)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1년 성지공립보통학교[현 성지초등학교], 1937년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였으며, 부친에게 배운 붓글씨는 훗날 그의 화필에 영향을 주었다.
[활동 사항]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 시절 김종식의 재능을 알아본 미술 교사에게 지도를 받았지만, 자식이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부친 탓에 그림에 대한 열망을 숨겨야 했다. 이 때문에 김종식은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해에 홀로 유학길에 올라 일본 도쿄[東京]의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예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하고서 비로소 부친의 허락을 받았다. 일본 제국미술학교의 입학 동기가 된 이로는 황염수·김창억이 있고, 임완규·최덕휴·권옥연·장욱진 등이 유학 동문이다. 유학 중이던 1938년에 재동경미술학우회 회원으로 백우회전(白牛會展)에 참여하였다.
1942년에 귀국하여 작품 활동에 전념하던 김종식은 8·15 광복 이후에는 교직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였다. 동래중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시작으로, 부산여자중학교·개성중학교·부산중학교·경남충무중학교·양산중학교·진해중학교·김해중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68년부터는 정년 퇴임하던 1983년까지 동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고, 동시에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종식은 1946년부터 1983년까지 총 19회의 개인전과 수십 회에 이르는 각종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개인전은 1946년 3월 동래중학교 강당에서 개최한 ‘김종식 유화전’을 시작으로, 1953년 1회 개인전[실로암 다방], 1954년 2회 개인전[실로암 다방], 1961년 3회 개인전[실로암 다방], 1963년 4회 개인전[부산 공보관], 1964년 5회 개인전[동광동 은다방], 1965년 6회 개인전[문화방송 쌀롱]과 7회 개인전[울산 명다방], 1966년 8회 개인전[마산 제일 다방]과 9회 개인전[진주 흑백 다방], 1970년 10회 개인전[동광동 맥스웰 다실], 1973년 11회 개인전[남포동 코스모스 다방], 1974년 12회 개인전[목마 화랑 다실], 1975년 13회 개인전[목마 화랑], 1978년 회갑 기념 회고 작품전[현대 화랑], 1979년 16회 개인전[국제신문사 전시장], 1982년 18회 개인전[남산 화랑], 1983년 19회 개인전[수로 화랑] 등이 있다.
1953년부터 김종식은 김경(金耕)·임호(林湖)·김영교·김윤민(金潤玟)·서성찬(徐成贊) 등과 함께 한 토벽회 동인 활동으로 부산 지역 화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토박이’라는 말을 전칭한 ‘토벽’이라는 명칭에서부터 드러나듯이, 토벽회의 결성은 당시 피난지인 임시 수도 부산에 몰려와 있던 중앙 화단의 미술인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1세대 지역 미술인들이 지녔던 향토적인 미의식과 지역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1953년에 이어 1954년에도 김종식은 ‘토벽 동인전’에 참여하였다. 이후 1955년부터 1956년까지 ‘7월 동인전’[현 군록전], 1969년에 ‘신제작 동인전’에 참여하였고, 1971부터 1975년까지는 부산 지역 원로 미술인들의 모임에서 가진 ‘후기전’, 1982년부터 1987년까지는 구상화 계열의 ‘하상전’에 원로로 초대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1948년에 ‘미술협회 창립전’과 민주중보사에서 주최한 ‘부산 미술전’, 1959년 ‘부산 현대 작가전’, 1962년 ‘부산 신춘 화전’[정우 싸롱], 1963년 ‘부산 예술제 미술 초대 작가전’[민주신보사 주최]과 ‘한국 미술전’[터키 앙카라 예술 회관], 1965년 ‘앙데팡당전’[부산미술협회 주최], 1968년 ‘진해 군항 미술전’, 1975년 ‘공간 화랑 개관 기념 3인 초대전’과 ‘지방 작가 초대전’[서울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 1977년 ‘한국 서양화 대전’[국립 현대 미술관], 1979년 ‘부산 미술 30년전’[부산미술협회 주최], 1980년 ‘동방 미술회관 개관 기념전’과 ‘제1회 부산 미술제’, 1982년 ‘부산 작가 50~70대 초대전’과 ‘원맥 9인의 형상전’, 1985년 ‘부산 판화제’, 1986년 ‘화랑협회 미술제전’, 1987년 ‘부산 미술 10인전’[갤러리 누보 개관전] 등 각종 전시회에 초대되어 작품을 전시하였다.
한편으로 김종식은 1959년 부산미술협회장, 1960년 경남교육미술연구회 부회장, 1962년 충무미술협회장, 1964년 진해미술협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미술의 살림살이를 맡았다. 또한 1959년에 부산시 문화상 심사 위원, 1968년 동아 국제 미술전 심사 위원, 1975년 제1회 부산 미술 전람회 심사 위원, 1982년부터 1983년까지 부산시 문화 위원을 역임하였다. 문화 예술계에 대한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84년 부산시 문화상과 국민 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종식은 모두 1,000여 권의 스케치북과 2만여 점에 달하는 드로잉화 유화 작품을 남겼다. 초기에는 표현주의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 경향을 보여주었으며 이후에는 부산의 풍경과 일상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당시에 제작된 부산항 연작들은 간결하게 압축된 형태와 윤곽선, 그리고 짙은 원색의 사용으로 독특한 화풍을 보여 주었다. 1950년 6·25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는 노점상·판자촌·귀환동포·제빙회사 등과 같이 동시대 삶의 정황들을 담은 그림을 그렸다.
1961년 작품인 「대결」이나 「갈등」 등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화면에서 형태와 색채는 더욱 해체되는 경향을 보여 주었으며, 추상 회화에 근접한 화풍을 보이고 있다. 청색 윤곽선의 풍경화를 연작으로 제작하였으며 영도·태종대·하단·통도사·범어사·천마산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김종식의 회화는 당시 화단의 주요한 담론이었던 추상과 구상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했으며 아카데믹한 화풍과도 거리를 두었다. 독자적인 화풍을 일군 한국 근대 미술의 대가 김종식은 1988년에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화집으로 『김종식 화집』[부산일보사, 1988]과 『김종식 드로잉화집』[도서출판 국제, 1987]이 있으며, 「귀환 동포」[1947] 등 대표 작품 20점이 부산 시립 미술관에 남아 있고, 「생」[1982]이 국립 현대 미술관에 남아 있다. 또 대한민국 예술원에서 발간한 『한국 예술 총집 - 미술편Ⅱ』[1999]에 「수전노」[1944]가 수록되어 있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간한 『한국 현대 미술의 시원전 도록』[2000]에 「인물 A」[1960]가, 『한국 현대 미술의 시원전 도록』[2000]에 「화병」[1962]이 수록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모전리 88-8번지에 있는 백운 공원묘원에 마련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4년 부산시 문화상과 국민 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으며, 1994년에는 김종식 그림비가 설립되었다. 추모전으로 1988년에 김종식 유작전, 1992년에 부산 작고 작가전[용두산 미술 전시관], 1996년 향토 작고 작가전[부산일보사], 1999년 김종식 특별전[부산 시립 미술관], 2000년 한국 현대 미술의 시원전[국립 현대 미술관], 2001년 김종식 회고전[부산 공간 화랑], 2001년 화랑 미술제[예술의 전당 미술관], 2002년 대구 아트엑스포[대구 문화 예술 회관], 2008년 김종식 20주기 심포지엄이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