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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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家月令十二曲屛 |
영어의미역 | Twelve Songs of Farming Calendar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현주 1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에서 제작한 풍속화 형식의 12폭 병풍.
[개설]
『농가 월령 12곡병(農家月令十二曲屛)』은 농사와 양잠과 관련하여 매월 농촌의 일거리를 그린 경직도(耕織圖)[농사짓는 일과 누에치는 일을 주제로 하는 그림] 계열의 병풍이다. 동래부 무관이었던 죽림 박주연(朴周演)의 주문에 의해 동래부 화사(畵師) 이시눌(李時訥)이 제작하였다.
[형태 및 구성]
『농가 월령 12곡병』은 12폭 병풍으로 각 화폭의 크기는 세로 64.3㎝, 가로 38.1㎝이며, 지본 채색(紙本彩色)[종이에 색을 입힌 형식]이다. 각 화면 상단에는 박주연의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가 쓰여 있다. 병풍의 전체 구성을 보면, 오른쪽에서 1폭부터 12폭까지 독립된 화면에 산수를 배경으로 1년 12달 농잠의 일거리가 월별로 묘사되어 있다. 화면 시점은 12폭 모두 평원법(平遠法)[작가와 같은 눈높이, 즉 수평의 상태에서 그린 그림]으로 구성하였고 일반적인 장폭(長幅)의 산수 배경에 비해 원경의 산수 묘사가 강조되었다. 전체적인 짜임새는 근경, 중경, 원경, 가운데 어느 곳 하나 소략한 곳 없이 모두 부각시켜 그렸다.
화면 세부 구성은 농번기와 농한기로 양분되어 각각 큰 차이를 보인다. 농번기 풍경은 밭 고르고 쟁기질하기[2월], 뽕잎 따기와 씨뿌리기[3월], 모심기[5월], 보리 도리깨질과 김매기[6월], 쟁기질·씨뿌리기·고무래질[9월], 타작하기·부뚜질하기[10월] 등으로, 넓게 펼쳐진 논밭을 근경과 중경으로 연결시키면서 인물을 확대하여 묘사하였다. 이에 비해 농한기에 해당되는 11월, 12월의 풍경은 경물을 근경 중심으로 확대하여 초가지붕 잇기, 땔감 장만하기, 바느질하기, 책 읽기 등 논밭 풍경보다는 집 안팎에서 행하는 일거리를 묘사하였다. 특히 농번기 화폭의 경우 논밭에서 소집단을 이루어 일하는 농민들, 새참을 이고 가는 아낙들 사이로 언덕이나 수목을 그려 넣어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로 삼기도 하였다.
[특징]
『농가 월령 12곡병』은 부분적인 모티프와 화풍에서 김홍도(金弘道)의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다수 발견된다. 1폭 화면 중앙의 나무 옆에서 담소를 나누는 두 노인과 그 뒤를 지나는 소몰이꾼의 모티프는 김홍도의 『병진년 화첩(丙辰年畵帖)』[1796, 호암미술관 소장] 「경작도(耕作圖)」와 경물 구성 및 인물 묘사는 물론 필치(筆致)까지 동일하다. 농사 장면에서는 전체적으로 가래질, 도리깨질, ‘개장’에 볏단 내리치기, 부뚜질 등 조선 시대의 농사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논갈이와 벼 타작 장면은 『단원 풍속화첩(檀園風俗畵帖)』의 장면과 유사하다. 특히 10폭에 묘사된 초가집 앞에서 감독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작하는 모습은 김홍도가 1778년에 그린 『행려 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 중 「타도악취(打稻樂趣)」와 인물들의 구성 및 자세, 묘사 방식까지 유사하다.
도상(圖像)과 구성 방식에서는 김홍도의 풍속화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고 있는 반면 인물의 골격 묘사와 옷 주름의 필치에서는 차이를 보이며, 자유분방하고 익살스런 인물들이 묘사된 점도 특징적이다. 또한 정선(鄭歚) 화풍에서 즐겨 그려졌던 T자형 수지법(樹枝法)[나무의 뿌리·줄기·가지·잎 등의 표현 기법]의 도식적인 묘사와 피마준(披麻皴)[주로 산의 겉면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산수화 준법으로 거친 질감을 가짐]에 변형된 미점(米點)[동양화에서 나무나 산수를 그릴 때 찍는 가로 점]을 사용한 점 등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화풍과 완숙하지 못한 지방 화풍이 아울러 나타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농가 월령 12곡병』은 넓은 의미에서는 조선 후기 궁중뿐 아니라 양반·서민 계층까지 확산되었던 경직도로, 월령체의 시와 그림이 완성된 형태로 결합된 예를 보여준다. 또한 작품의 주문자와 제작자가 동래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인물들로 지방회화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 수록된 「농가월령가」를 지은 인물은 동래 무인이자 세거인(世居人)이었는데, 이를 통해 지방 지배 계층의 유교적 이상과 문인적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시눌이 제작한 병풍으로 이 작품 외에도 박주연의 후손이 또 다른 『농가월령가 12곡병(農家月令歌十二曲屛)』을 소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농가월령가의 화제(畵題)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화면 구성과 도상은 아주 유사하여 원본과 이모본(移摹本)[원본을 보고 그대로 옮겨 그린 그림]의 관계로 제작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회화의 의례적·장식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병풍이 성행하였고 화본에 의해 동일 그림이 재생산되었는데, 『농가 월령 12곡병』을 통해 이러한 양상이 지방에서도 다르지 않았다는 점과 동래 지역 화가들의 활동 영역이 확산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