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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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廣域市改編 |
영어의미역 | Promotion of Busan into Busan Metropolitan City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덕주 |
[정의]
1995년 부산이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개편한 일.
[제정 경위 및 목적]
부산은 1995년 1월 1일 부산직할시에서 부산광역시로 개편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지방자치제의 본격적인 시행에 따른 「지방 자치법」의 개정으로 지방 자치 단체의 계층 구조와 행정 구역 조정의 필요성에 따라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는 행정 수요에 따른 구역 조정, 광역 행정 수요의 확대, 지방 재정력의 지역 간 격차 해소, 생활권과 경제권의 확대 등이 행정 구역 개편의 논리로 나타났다.
그러나 직할시로 개편될 당시에도 이 같은 표면적인 이유 외에 경상남도와 부산직할시의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작용하였듯이, 광역시(廣域市)로의 개편도 다분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결과물로 나타난 성격이 짙다. 왜냐하면 광역시 개편에 따른 행정 구역의 개편은 불가피하게 선거구의 조정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내용]
1994년 당시 내무부는 직할시의 명칭을 광역시로 바꾸고 광역시역 내에 군(郡)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 자치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정기 국회에 제출하였다. 개정안은 도시와 농촌을 통합하는 도농 통합(都農統合) 형태의 광역시제(廣域市制)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는 양산군(梁山郡)의 5개 읍·면을 농촌 지역의 특성과 인구 규모 등을 고려하여 기장군(機張郡)으로 개편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기장군은 기장읍(機張邑), 장안읍(長安邑), 일광면(日光面), 정관면(鼎冠面), 철마면(鐵馬面)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진해시 웅동(熊洞) 2동의 일부 지역도 행정 구역으로 편입되었다.
부산광역시에 편입된 기장군은 전체 면적이 217.92㎢이고, 2만 3060세대에 인구는 6만 5878명이었다. 그러나 전체 면적의 85%가량이 그린벨트이고, 21%가 상수원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편입지의 대부분이 가용 토지(可用土地)가 아니어서 지역 발전이 매우 낙후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기장군청의 조직은 2실 9과 47계로 하고, 2읍 3면에는 29계를 두었으며, 전체 공무원은 408명이었다.
광역시로 발전한 부산은 1995년 3월 제6차 행정 구역의 확장으로 기존의 동래구에서 연제구가, 남구에서 수영구가, 북구에서 사상구가 분구(分區)되었고, 앞서 언급한 기장군이 포함되었다. 그 결과 부산광역시는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남구, 북구, 해운대구, 사하구, 금정구, 강서구, 연제구, 수영구, 사상구, 기장군 등 15구 1군이 부산광역시의 기초 자치 단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개편 당시의 부산의 행정 구역은 15구(區), 1군(郡), 2읍(邑), 3면(面), 234동(洞)이었으며, 면적은 총 748.92㎢로 전 국토의 0.75%를 차지하였다. 행정 기구는 3실, 2단(團), 10국(局), 1본부(本部), 7관(官), 14담당관(擔當官), 40과(課)로 공무원 정수는 총 1만 6744명이었다. 공무원의 기관별 구성비는 시가 6,139명으로 37%, 자치구가 1만 551명으로 63%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직종별로는 일반직이 9,964명으로 59.4%, 기능직이 4,230명으로 25.3%를 차지하였다. 개편 당시인 1995년도 말 기준 부산광역시의 인구는 389만 2972명으로 전국 인구인 4598만 1910명의 8.46%에 이르렀고, 113만 2360세대에 세대원은 평균 3.43명이었다.
1995년 6월 지방 자치 단체장을 포함하는 동시 지방 선거가 시행되어 민선 초대 시장으로 민주자유당의 문정수(文正秀) 후보가 유효 투표의 51.4%로 당선되었으며, 민주당의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37.6%를 획득하였다. 지방 의회는 시의원 61명 중 민주자유당이 54명으로 압도적으로 당선되었고, 구청장의 경우도 16개 구청장 중 14개를 민주자유당이 차지하였다. 기초 의회의 경우는 정당 공천이 배제된 선거이었다. 부산광역시의회는 2002년 부산 아시아 경기 대회 유치, 낙동강 수질 개선, 지하철 건설 등의 의정 활동에 주력하였다.
부산광역시의 개편 초기인 1995년 말을 기준으로 경제 활동 참가율은 60.5%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고, 실업률은 3.5%로 낮게 나타났다. 그리고 산업별로는 사회 간접 자본 및 기타 서비스업이 70.4%를 차지하여 부산의 산업 기반이 취약함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광역시의 개편과 관련한 구역 개편은 부산시가 당초에 원하였던 김해시·군을 포함한 낙동강 서안 일부 지역이 배제된 것이었다. 이렇게 서부산권의 편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부산 지역의 중장기 발전 계획에 차질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고, 균형적이고 장기적인 시역의 발전을 기하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부산이 광역시로 개편되기는 하였으나 행정 계층 간 기능의 중복 문제, 외부 효과로 인한 광역 행정 수행의 어려움, 광역시 내부의 자치 단체 규모 및 재정력의 불균형 문제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전국의 모든 광역시의 공통적인 문제점이라 하겠다. 특히 부산은 광역시 개편 이후에 오히려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기업의 역외 이전, 출산율의 감소, 노인 인구의 증가 현상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각종 삶의 지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광역시 개편 당시의 행정 구역 개편과 그동안의 운영 성과에 대한 학계의 연구 결과는 대체로 긍정적이지 않다. 이에 따라 현재의 도(道)나 광역시는 수도권에 비하여 지역 경쟁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차제에 광역시 체제를 새롭게 전면적으로 재편할 필요성이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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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 내용 수정 | [제목] 부산광역시 승격 → 부산광역시 개편 ------------------------------------------- [한자] 釜山廣域市昇格 → 釜山廣域市改編 ------------------------------------------- [정의] 승격한 일. → 개편한 일. ------------------------------------------- [제정 경위 및 목적] 승격되었다. → 개편되었다. ------------------------------------------- 직할시로 승격될 → 직할시로 개편될 ------------------------------------------- 광역시(廣域市)로의 승격도 → 광역시(廣域市)로의 개편도 ------------------------------------------- 광역시 승격에 → 광역시 개편에 ------------------------------------------- [내용] 승격 당시의 → 개편 당시의 ------------------------------------------- 승격 당시인 → 개편 당시인 ------------------------------------------- 부산광역시의 승격 초기인 → 부산광역시의 개편 초기인 ------------------------------------------- [의의와 평가] 부산광역시의 개편과 → 부산광역시의 승격과 ------------------------------------------- 부산이 광역시로 승격되기는 → 부산이 광역시로 개편되기는 ------------------------------------------- 승격 이후에 → 개편 이후에 ------------------------------------------- 광역시 승격 당시의 → 광역시 개편 당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