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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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山商會 |
영어의미역 | Baeksan Shop |
이칭/별칭 | 백산무역주식회사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백산길 13-1[동광동 3가 1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1914년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에서 안희제가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설립한 회사.
[설립 목적]
백산상회는 구국 운동도 경제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백산 안희제[1885~1943]가 국외 독립운동가와의 연락망을 확보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독립운동 기지로 설립하였다. 안희제 등 백산상회 관계자 대다수는 1915년 대구에서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변천]
백산상회는 의령에 있는 안희제의 전답 2,000두락을 팔아, 이를 기반으로 1914년경에 이유석(李有石), 추한식(秋翰植) 등과 함께 설립하였다. 상회의 명칭은 안희제의 호인 백산에서 땄다. 백산상회는 곡물, 면포, 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회사로 출발하였다. 1917년 합자 회사로 변경했다가, 1919년 5월 백산무역주식회사로 확대 개편하였다. 이는 영남의 조선인 대지주들이 주주로 참여함으로써 가능하였다.
1921년 8월에 백산상회는 자금난으로 경영 위기를 맞았으나, 사장 최준(崔俊)이 소유 재산 대부분을 투자해 경영에 매진하였다. 1925년 이후 주주와 중역 사이에 자금 횡령 문제로 서로 고소하는 일대 분규가 발생하여 사실상 영업 중지 상태에 빠졌고, 1928년 1월 29일에 자진 해산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백산상회는 명목적으로는 곡물, 면포, 해산물을 판매하는 회사였다. 이후 내외국 물산 무역 및 위탁 매매뿐 아니라 부동산 매매, 금전 대부업까지 거래하는 회사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백산상회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이 국내로 보급되고 임시 정부의 경비가 전달되는 통로였다. 이외에도 백산상회는 조선주조주식회사, 경남인쇄주식회사 등 부산에서 조선인 기업이 설립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현황]
1994년 11월 4일 부산광역시 중구는 백산상회가 있던 곳의 앞을 백산 거리로 제정·공포하고,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 10-2번지에 백산 기념관을 건립하여 안희제의 독립 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실제 백산상회가 있던 자리는 백산 기념관이 건립된 근처인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 12번지로, 현재 프라임원룸이 들어선 자리이다.
[의의와 평가]
백산상회는 일제 강점기 부산·경상남도에서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수행했으며, 지역 내 사회 운동과 조선인 경제 활동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따라서 백산상회의 원래 위치를 찾아 표지석과 같은 안내판을 세워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