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5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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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先泰 |
영어음역 | Choe Seontae |
이칭/별칭 | 여형(汝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안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계형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여형(汝亨). 할아버지는 통사랑 최정언(崔挺彦), 아버지는 최두(崔㞳), 어머니는 여주이씨(驪州李氏)로 부사직 이상공(李尙恭)의 딸이다. 동생이 전라좌수사를 지낸 최극태(崔克泰)이다.
최선태는 1666년(현종 7) 선전관을 지내고 삼조(三曹)의 좌랑, 오위도총부도사, 오위도총부경력, 오위도총부부정, 내금위장 등을 지냈다. 외직으로 재령군수, 가산군수, 곤양군수, 봉산군수 등을 역임했다. 1688년(숙종 14) 철원도호부사에 임명되었고, 1690년(숙종 16) 황해도수군방어사망겸소강첨사(黃海道水軍防禦使望所江僉使)[종3품]에 임명되었다. 이때 최선태는 부모의 나이가 90살이라는 이유로 체직(遞職)을 청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황해도 봉산군수에 제수되었다. 1691년(숙종 17) 6월 영종첨사(永宗僉使)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6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느진구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