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4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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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公緝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태근 |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이고 1896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913년 남강 이승훈이 건립하여 민족 교육을 펼친 오산학교를 3회로 졸업하였다. 오산학교 교사로 있던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 여준에 의해 죽산군 원삼면 능골[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릉리]에 있던 삼악학교와 만주 통화현 신흥무관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의 정칙영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웠으며 경응의숙의 이재과에서 공부하였다. 1918년 귀국하여 1919년 3·1운동 후 서울의 한성정부에서 13도총간부 교통부장으로 활약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
1920년 상해에서 임시정부의 노동국 총판 안창호를 만나 흥사단 원동위원부에 입단하여 활동하였다. 상해에서 계속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중 한단군사강습소와 광동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5년 모스크바 비행학교에 입학하여 전투기 조종훈련을 받고 졸업하였다. 그 후 1927년 8월 31일 모스크바 근교 셀프호프시에서 비행훈련 도중 기계의 고장으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그의 유해는 1994년 고국으로 돌아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공집의 묘소는 사후 모스크바 근교 셀프호프시 트로이츠키사원에 묻혀 있다가 1994년 7월 4일 국내로 봉환되어 서울시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