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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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明胤 |
영어음역 | Han Myeongyun |
이칭/별칭 | 회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광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회숙(晦叔).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한이(韓頤)이며,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 박행장(朴行狀)이다.
한명윤(韓明胤)[1542~1593]은 1568년(선조 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천거를 받아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9월 27일 영동현감(永同縣監)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본 고을을 굳게 지키면서 백성들을 안집(安集)시켰으며, 의병을 모아 용전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 충용(忠勇)을 가상히 여겨 품계를 올려 주고 조방장(助防將)을 겸하게 하였다. 1593년(선조 26)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제수되어 방어사(防禦使)를 겸임하여 활동하던 중 10월에 전사하였다.
한편 한명윤은 출전하는 길에 부인 박씨에게 멀리 피신할 것을 권유했으나 박씨는 결연히 함께 죽음을 택하기를 원하면서 피신하지 않았다. 얼마 후 왜적이 침입해 오자 가솔들의 간청을 뿌리치고 “내 어찌 구차하게 살기를 원하겠느냐”하면서 비수로 자결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오르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또한 선조는 부인 박씨의 순절을 가상히 여겨 충신문(忠臣門)과 열녀문을 내렸다. 이 충열각은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리에 있으며, 1986년 5월 20일 경기도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